서울 에세이 - 근대화의 도시풍경, 강홍빈과 주명덕이 함께하는 서울 기행
강홍빈 지음, 주명덕 사진 / 열화당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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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울에세이’라는 제목에 흥미를 가지면서 이 책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에세이란 한 개인이 경험한 어떤 사실에 대해 느낀 점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글을 말한다. 따라서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의 내용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지은이가 체험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고, 지은이의 장소감(sense of place)과 장소애(場所愛:topophilia)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지면서 이 책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유럽 도시들이 부러웠으며, 우리는 왜 그러한 도시를 만들어 내지 못했는지 자괴심을 버리기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도시만의 개성과 매력을 발견하면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월드컵 기간동안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로 소개된 외신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 뿌듯했다고 말한다.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서울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에세이에서는 서울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도시계획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기 위하여, 경험적 장소와 일상적 공간을 기행하고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낸 역사적 힘, 그리고 공간에 반영된 시간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특히 도시경관의 텍스트를 통해 각 장소의 특성과 차별성에 주목하되, 이러한 장소들이 어우러져 보이는 서울의 총체적인 모습과 그 성장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에세이의 공간 대상지로는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예술의 전당에 이르는 길로서 서울시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길인 세종로, 태평로, 소공로, 반포로를 포함한다. 서울을 남북으로 크게 종단하는 이 길에는 국가와 도시의 중추기능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신주작대로(新朱雀大路)’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였다.

신주작대로의 거리에는 근대 이전 조선조가 남긴 지층,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화’ 속에서 형성된 지층, 그리고 해방 뒤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이룩된 지층 등 역사적 연원이 다른 세 지층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층의 깊이는 거리의 구간마다 다르게 나타나 세종로에는 세 지층이 다 겹쳐져 있고, 태평로와 소공로에는 그보다 덜 하며, 남산 이남의 반포로에는 최근의 지층만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서울은 육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불행했던 근대화 과정과 급성장기의 개발시대를 겪으면서 도시는 훼손되고 파괴되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서울은 근대화 백 년, 짧게는 산업화 삼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과제는 갑작스럽게 성장한 거대도시를 안전한 도시, 건강한 도시, 푸른 도시, 풍요로운 도시로 가꾸어 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한 애정과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낸 역사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상을 온전하게 판단하고 밝은 내일을 신뢰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 도시를 만든 주체는 국가와 그 집행자인 관료조직이었으며, 그 결과 도시공간은 크게 왜곡되어졌다. 횡단보도 대신 육교와 지하도가 생겨났고, 아름다운 강변도시를 아파트가 성벽처럼 가로막았으며, 자동차 도로에 막힌 한강변으로 시민들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관(官) 대신 서울의 주인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논의를 통해 병든 서울의 공간을 치유하자고 지은이는 제안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서문에서 ‘도시는 시민이 만든다. 그래서 도시는 시민을 닮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명제에 의하면 서울의 얼굴은 곧 도시를 만들어 가는 시민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자화상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일상성을 공간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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