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사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앙리 마티스의 특별전에 다녀왔다. 그의 작품이 ‘비행사’와 어울리는 건 파란 색감의 표지뿐만이 아니다. 소설 비행사의 주인공인 ‘인노켄티’는 한 세기의 러시아를 살아내며 어떤 거대한 사건보다는 개인의 작은 삶들이 모여 역사의 주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고, 앙리 마티스 또한 약 84년 일생 동안 드로잉부터 컷아웃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의 다작을 통해 거의 한 세기의 회화 역사를 만들어 낸다. 실제 했던 마티스와 소설 속 인노켄티가 오늘 우리 집에서 조우했다.

제목이 왜 비행사일까?
비행사가 하늘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사물이 점이 되고, 그 점의 모습은 마치 사람 얼굴같이 보인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시야가 확보되면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역사는 큰 패러다임에 의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개인의 소소한 작은 오늘들이 모여 큰 줄기가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노켄티’는 본인 인생의 위대한 비행사이다.

1부, 2부로 총 57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읽어나갔다. 1부는 인노켄티의 의식의 흐름을 날짜가 아닌 요일로 표시한 일기 형식이다. 2부는 주치의 가이거, 인노켄티의 그녀 나스챠 그리고 인노켄티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2부의 초중반에는 [가이거],[인노켄티],[나스챠]의 제목으로 같은 사건을 3명의 일기로 교차시켜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이름 없이 [ ], [ ], [ ]로 쓰여지고 결국에는 누가 쓴 건지 구분 없이 괄호마저 책에서 사라진다. 그들의 의식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인노켄티의 기억의 소멸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섬세한 감성적 터치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SF, 역사, 유머, 로맨스, 서스펜스, 반전 모두 다 담긴 접하기 쉽지 않은 귀한 러시아 소설 한편이었다. ‘언제 다 읽지?’로 시작했으나 마지막에는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아까웠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