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청계천의 상징물이 된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조형물 앞, 흑인 모녀가 정겹게 사진을 찍는 모습에 오늘 따라 유난히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이 책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은 탓일 겁니다.

  책은 노예제도가 극성을 부린 19세기 초 미국 남부지역에서 태어난 흑인 노예 소녀 코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이해를 돕자면 코라는 4050세대라면 기억하실 70년대 온 가족을 TV앞으로 모이게 한 드라마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의 여자 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월 탓이겠지만 자유를 향해 농장을 탈출한 쿤타킨테를 발가락을 자르는 벌로 응징하는 장면만 희미하게 남은 뿌리에 비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미국 남부의 역사와 지역적 특성, 노예제도의 잔혹성과 그 속에 실낱같이 존재하는 사랑과 인류애를 상징하는 등장인물들의 전형이 선명하게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진데다, 노예탈출을 위해 노예해방조직이 운영하는 지하열차가 존재한다는 발칙한 상상력이 더해진 수작입니다.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 메이블 마저 딸을 내버려두고 도망가 사고무친한 코라는 다행히 할머니, 엄마의 성정을 빼닮아 씩씩하고 강인합니다. 할머니가 물려준 작은 땅을 뺏으려는 만딩고족의 개집을 도끼를 박살내면서 코라가 던지는 말은 이런 코라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죠!

 

“내가 나를 이길지는 모르지만,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어느 날 노예 농장의 개구쟁이 체스터가 사소한 실수로 가혹한 채찍질에 고통 받고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을 때, 여인 코라는 체스터를 감싸며 모진 형벌을 감내합니다.

각자도생 분위기가 팽배한 당시에 이질적인 인간애의 발로였으나, 농장주에 ‘찍히는’ 계기, 심려 깊은 또 다른 남자 노예 시저에겐 농장 탈출의 동지로 선택받는 이유가 됩니다.

주저하던 코라는 시저의 진중함에 이끌려 탈출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겁탈하려던 백인 소년을 죽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조직원인 플레처와 비밀역장 럼블리의 도움을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하나 노예사냥꾼 리지웨이의 등장으로 잠시 허니문이었던 그 곳은 이내 시저가 죽는 비터문으로 변해버립니다.

  리지웨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머리 청부 살인자 하비에르 바르뎀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캐릭터의 노예 사냥꾼입니다. 끝내 잡지 못해 자신의 경력에 흠집을 낸 코라의 엄마 메이블에 대한 증오를 코라에 투사시키면서 소설의 마지막까지 코라와 대비되는 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 후 오랫동안 코라의 고단한 여정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인디애나를 거쳐 북부에 이르는…….

가로수 가지마다 탈출하다 잡힌 노예들의 목매달린 시체가 즐비하고, 민병대, 순찰대 등 공적조직은 하나같이 탈출 노예 체포에 혈안이 된 그 곳은 지옥이지, 적을 두고 살 만한 안식처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인지 백인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대체로 냉소적입니다.

리지웨이나 농장주 랜들 부자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에게 비교적 친절했던 의사 스티븐스, 사감 미스 루시에 더해 탈출을 도와주었다가 죽음을 당하는 마틴 부부에게도 우생학, 배금주의, 왜곡된 종교관의 굴레를 씌워 비틀어버립니다. 그 클라이맥스는 12세 어린 백인 소년이 성폭행을 저지르는 도덕적 무감각과 백인이 그토록 신성시하던 독립선언서 철학과 판이한 그들의 실제 행동을 통해서요.

 한 편 이런 와중에서도 코라는 엄마 메이블에 대한 소식을 지속적으로 탐문하는 모습을 보여 그녀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노출합니다.

마침내 코라가 리지웨이에 체포됨으로써 소설은 위기로 치닫고, 흑인 청년 로열에 의해 구조되어 테네시로 다시 도피하는 반전이 나타납니다.

흑인에 우호적인 농장주로 인해 생애 단 한 번 편히 지내는 코라에게 연감을 선물하며 로열은 핑크빛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탈출노예 수용여부를 놓고 토론회가 열리는 날, 백인들의 급습으로 연인 로열이 사망하는 거듭되는 불행이 다시 코라를 옥죄이고, 설상가상으로 리지웨이에게 다시 체포되어 비밀 역의 위치를 자백하라는 협박에 처하게 됩니다.

 연기 속에서 잡힐 듯 말 듯 한 메이블의 최후는 충격적이었지만,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열린 결말도 괜찮았고요!

인간성의 회복에 더하여 저자 화이트헤드는 약한 자의 연대와 자각도 강조하는 듯합니다. 소설 말미 도서관이 자주 출현하고 글 읽기를 강조하는 대목이 많이 나타나면서, 마침내는

 

“아름답고 귀한 무엇인가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으로 자유를 정의내립니다.

 

마지막까지 리지웨이에 기생하는 흑인 소년 호머는 저자의 충고를 따르지 않는 핍박받은 자의 표상입니다.

  200년이 지난 소설의 배경에 아직 울림이 작지 않다는 사실은 곤혹스럽습니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무려 24개 단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 책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영광 뒤엔 아직도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는 구별 짓기가 상존한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얼마 전 손흥민 선수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영국 축구팬에게 벌금이 부과됐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인류 문명의 상징인 유럽의회를 인종차별을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극우정당이 휩쓸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노예해방선언이 있은 지 150여 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 50년이 흘렀는데도요…….

  그 러고 보니 흑인인 저자의 이름이 “화이트헤드‘입니다.

흑인으로 사는 게 힘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위악적으로 그렇게 작명함으로써 백인 주류사회를 조소하고자 함일까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자유를 위해 탈출한 코라의 여정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코라의 고된 여정이 부디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밝은 빛이 함께 하는 ground railroad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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