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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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발간소식을 듣는 순간 퇴사 때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책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지요.

대한민국 유수의 재벌그룹, 그것도 나름 스마트한 사람들이 근무한다는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나는 사내 셀 수도 없이 많은 ‘또라이’들과 조우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나갈 수 있는지, 항상 궁금했고, 그만큼 대마불사의 관성은 대단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또라이는 9.11테러 직후 회사 사옥을 알 카에다가 공격할 수 있다며 도피경로를 강구하라는 어찌 보면 코미디 수준의 지시를 남발하던 상사였습니다.

결국 아기가 메르스에 걸려 출근 못한 여직원을 출근하라 다그치는 상사와의 다툼 끝에 저는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 우리 기업의 민주주의는 요원한가 봅니다.

한진 3총사를 위시해 잊을 만하면 나오는 재벌의 갑질, 최고의 직장으로 추앙받는 강원랜드와 하나은행의 엽기적 채용비리, 덩그렇게 놓인 컵라면으로 기억되는 안타까운 김용균씨의 죽음은 봄이 오지 않은 직장민주주의를 가리키는 바로미터입니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88만원 세대’란 신조어로 누란에 처한 청년세대를 정확히 묘사한 진보경제학자 우석훈 대표의 책입니다.

저의 예상과는 달리 -로버트 서튼 교수의 <또라이 제로 조직>처럼 직장 내 또라이의 존재로 인한 폐해 서술과는 결을 달리하며- 우 대표는 문 앞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멈추게 한 요인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되, 팀장, 젠더, 오너 등으로 영역을 구분해 각 차원에 숨어 민주주의로의 진행에 발목을 잡는 ‘민주주의의 적’들을 고발하고, 대안을 조심스레 제시합니다.

저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살아 움직이는 조직으로 군대와 더불어 회사를 꼽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일부 꼰대들은 상명하복=효율성의 등식을 과신하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다음과 같은 충고는 그들이 반드시 경청해야할 좋은 인사이트입니다.

“직장 민주주의는 조직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 장치 중 하나다”

저자의 처방은 마침내 조직 내 제도, 구조의 문제로 승화되며, 특히 직장 민주주의의 빠른 정착을 위해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 실시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SO인증제처럼 공신력 있는 단체가 직장 민주주의 수준을 척도화 해 서열을 매기고, 이를 공시하여 전 기업으로 하여금 도입 필요성을 재촉하자는 취지입니다.

괜찮은 아이디어이지 않습니까?

책 곳곳에 여성, 비정규직, 기업체 하급직원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읽은 일간 신문과 경제신문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논지가 전개되어 읽는 이의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그만큼 필요합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을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직장 민주주의는 다음 세대에게 좀 더 인간다운 직장을 주는 일,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사족! 오늘도 자그마한 권력의 완장을 차고 갑질을 일삼는 일부 꼰대들에게 강준만 교수가 쓴 다음 글의 일독을 권합니다.

“기업은 비민주적일때 더 효율적이라는 미신을 믿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일종의 노무관리 기법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그런 미신의 연장선상에서 복종과 상명하복을 자신의 지위를 만끽하는 기쁨으로 간주해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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