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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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공중에 체류하는 여인.......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소설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보석 같은 소설을 탄생시킨 ‘한겨레 문학상’ 올해 수상작입니다.

일제하 한 여성의 신산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대기 형식을 빌린 이 소설은 ‘세상을 두루 품은 용’이란 - 여성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 이름을 가진 주인공 주룡의 느닷없는 결혼에서 시작됩니다.

나이어린 신랑과의 혼례 초야, 경직된 표정의 신랑이 독립군 입대를 내비치는 데서 순탄치 않은 주룡의 여정은 예고됩니다. 어리지만 올곧은 신랑의 결기에 감복한 주룡은 사랑을 믿고 독립군 가담을 위해 야반도주의 무모함을 선택합니다.

특유의 대범함과 활달함으로 독립군에서 두각을 보인 주룡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이 미미한 남편 전빈의 자격지심은 주룡과의 갈등을 야기하고, 홧김에 뱉은 전빈의 말에 마음을 다친 주룡은 홀로 고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사소한 부부간의 대립은 그러나 큰 비극을 몰고 오는데 전빈의 이른 죽음입니다. “임자가 이런 사람이어서 나는 좋았에요“. 전빈이 주룡에 남긴 마지막 헌사입니다.

이 대목은 제가 아름다워 수차례 곱씹은 책 띠지의 문장 “삶이란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투쟁하는 것”에서 예단한 책의 전개를 완전히 전복시키기도 한 모멘텀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룡부부가 알콩달콩 살아가며 부딪히는 여러 고난을 극복하는 줄거리를 가진 소설로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이후 소설에서 출연하는 남성을 보는 저자의 관점은 무능, 비겁, 폭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약간의 ‘페미니즘’적 요소를 띠게 되면서, 소설은 완전히 주룡 1인의 영웅적인 단독플레이가 전개됩니다.

‘무능’의 상징인 아버지에 반발해 평양으로 가출한 주룡은 고무공장에 취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곳엔 ‘폭력’의 상징인 반장이 기다립니다.

애달파라! 주룡의 삶엔 평안이 끼어들 여지가 없나봅니다.

불합리한 임금삭감과 열악한 근무여건에 구타가 만연한 공장의 한켠에서 주룡의 저항의 결기는 벼려지고, 노조에 대한 사랑의 불씨는 마침내 활활 타오릅니다.

하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몰입한 파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주룡이 “평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죽자”고 스스로를 몰아 당도한 곳은 ‘을밀대’입니다.

허기로 쉴 새 없이 감겨오는 야속한 눈꺼풀을 억지로 치뜨며 을밀대 지붕으로 광목을 걸쳐 오르는 주룡의 모습은 상당히 비장해, 둔한 사내의 가슴에도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주룡은 찬란하게 쓰러지고, 부끄러움은 찌질한 남성의 몫이 됩니다.

띠지의 ‘사랑하는 이’는 남성이 아니었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 바로 ‘동지’였습니다.

시대를 달리하지만 주룡이 남긴 가치는 그야말로 으뜸으로 곱습니다.

마지막은 소설가 심윤경씨의 평으로 갈음할까 합니다.

“내가 이 소설은 편애한 기준은 단순하다. 소설을 읽다가 그 속의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럼 볼 것도 없이 잘 쓴 소설이다.”

리뷰를 끝내려하니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서 책의 ‘물성’을 소중히 여기는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체공녀 강주룡’의 표지는 제가 근년에 본 책표지 중 가장 강렬하고 독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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