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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살아보자 - 풀꽃 시인 나태주의 작고 소중한 발견들
나태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최근 공주를 여행할 일이 있었다. 맘 먹고 찾아간 골목길이 참 흥미로웠다. ‘시와 시화가 있는 공간, 나태주 골목길.’ 하얀 벽에 깔끔한 그림과 나태주 시인의 시가 적혀 있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으면서 어느새 마음이 말랑말랑 해져갔다. 내친김에 제민천 옆으로 오랜 시간을 걸었다. 여러 곳에서 풀꽃 시인 나태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나태주 시인이 산문집을 냈다. <봄이다 살아보자>. 나태주 시인은 이제 77세가 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대 젊은이들도 그의 시를 좋아한다. 때론 위로받았다고 말한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 비밀이 뭔지 짐작하게 됐다.
일단 시인은 매우 서민적인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시인. 시인은 아내가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반의 반을 사다가 찌개를 끓이는 일도 잦았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한다. 반의 반이면 150그램이다. 가게 주인은 ‘반의 반요?’ 되묻곤 했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 그런 서민적 정서 또는 일상이 바로 시의 밑바탕이 된 게 아닐까?
심지어 시인은 잡초에까지 애정을 표현한다. ‘곡식 밭에 채송화가 났다면 그건 화초가 아니라 잡초’다. 그렇듯 누군가의 필요로 정하는 기준은 다수자의 횡포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놀랍다. 내가 잡초이고, 그래서 ‘여지없이 뽑혀서 버려지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보면 그의 시선이 누구를 향하는지 금방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풀꽃을 응시하는 시인을 한 번 상상해봤다. 당연히 뻣뻣하게 서서 내려다보면 저런 얘길 할 수 없다. 지금 시인은 땅에 납작 엎드려 최대한 가깝게 풀꽃을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면서. 이렇게 낮춘 시인의 자세, 이게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비밀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지만 사실 시인은 50년 넘게 무명이었다. 시인의 표현대로 ‘시골에 머물러 살면서 외로웠고 소외된 지방 시인.’ 하지만 그는 시가 좋았고 시를 계속 썼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 덕분에 그의 시는 깊은 공감의 폭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시인은 20대와 밥을 먹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20대의 말 습관 하나를 얘기한다. 바로 ‘맞아요’라는 말을 20대만 많이 쓴다는 얘기다. 듣고 보니 ‘그런 듯하다.’ 시인은 ‘맞아요’란 말을 들으면서 내가 틀린 사람이 아닌듯해 기분이 좋아진다고 얘기한다. 이렇게 시인은 섬세한 언어 감각으로 20대의 습관을 발견하고 그 의미에 공감해준다. 이러니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맞아요.’ 시인도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란 짧은 시로 화답한다.
오직 마음 평온한 이들만이 상대를 온 몸으로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작지만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 하나로 순식간에 공감의 바다를 만들어버리는 능력, 그건 쉬운 말을 썼다거나 일상의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시인의 마음 씀씀이의 평온함, 그 깊이 덕분에 시인이 바라보는 대상을 온 몸으로 공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사실 시인은 정말 젊은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 너나없이 마음으로 힘들다. 지쳤다’는 것을 안다. 그런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시인은 시를 쓴다고 얘기한다. 시인 자신의 고뇌와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겸손하게 얘기한다. 시인은 선각자나 스승이 아니고 이웃이고 친구라는 생각. 이게 시인이 생각하는 시 작법의 철학이다.
이런 할아버지라면 마음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내 자잘한 얘길 털어놓아도 좋을듯싶고, 건성건성 내 얘길 듣지 않을거란 믿음을 준다. 그러고보니 시인의 시엔 유독 ‘너’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시인은 지금 내 얘길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양갱의 단맛이 강해지려면 약간의 짠맛이 섞여야 한다는 얘길 들려주면서, 우리 모두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반대되는 것과 더불어 존재함을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인생의 연륜이 길어질수록 아집이 늘어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내가 살아봤더니 그렇더라는 말만큼 자기 확신에 찬 말이 또 어딨을까? 그런데도 시인은 반대되는 생각에도 경청해야 함을 양갱 하나 먹으면서 일러주고 있다. 왜 그가 그렇게 겸허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시를 쓰는지, 생각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시인의 말이기에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고 응원으로 이어진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시인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에게 건네는 말 ‘봄이다, 살아보자’가 참 반갑다. 섣부르게 다 좋아질 거라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냥 같이 가보자고 한다. 가능하면 멀리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