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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잃어버린 시대, 흩어진 이야기를 추적하는 삶의 대서사극"
작가 우밍이는 현대 대만 문학을 대표하는 대만 국민 작가이며, [도둑맞은 자전거]는 국내에서 나온 첫 장편소설이다.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리브르 앵쉴레르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1992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주인공 '청'은 아버지를 찾다가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을 추적한다.
자전거에 얽힌 '청'의 집안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까막눈이었던 외조부는 자전차를 도둑맞았다는 신문기사를 접어 소중히 보관하며 자전차 한 대를 갖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꿈은 외할아버지의 죽음과도 이어진다. 당시의 자전거는 자전차라고 불릴 정도로 집 한 채와 맞먹는 큰 재산이었던 것이다.
'청'은 딸만 내리 다섯을 둔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경험한 여러 상실감들을 가슴에 묻은 채 어른이 된 후 고물 수집가 '아부'를 통해 아버지의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에 대해 힌트를 얻어 자전거가 거슬러온 여정을 가보기로 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전거의 궤적을 쫓던 '청' 앞에는 옛 풍경이 드러나며, 현대 대만에서 출발해 쏟아지는 폭격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 말레이반도, 북미얀마의 밀림을 헤매는 코끼리와 사람 등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이어지며 희미하게 빛바랜 자전거를 끄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사라진 아버지와 자전거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청'은 이별과 상실, 삶과 죽음, 전쟁의 상흔들을 만난다. 전쟁에 희생된 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동물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사라진 자전거'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는 얽혀 있다. 가족의 서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식민시대의 역사와 전쟁 등 대만 100년사를 묵직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중간중간 바이크의 노트를 통하여 다양한 시대별 모델의 자전거를 보여주며, 자전거의 역사도 볼 수 있다.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을 찾는 이야기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전거를 통하여 누군가는 삶을 지키고, 누군가는 운명을 바꾸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허구의 자전거를 타고 바퀴를 거꾸로 돌려 따라가보는 색다른 과거로의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를 특히 전쟁의 슬픔을 서정적 감성에 시적인 언어가 더해져 매혹적이기까지 한 소설이다. 그저 인생의 운 만 믿고 살았던 그에게 돌아온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 '04886' 수십 년이 흘러 색은 바랬지만 행복자전거는 여전히 바퀴를 굴리며 땅을 딛고 움직인다.
묵직한 소설이지만 우리는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기억을 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소설에서 희망을 본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당신에게 그날 새벽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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