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뱀과 나
와이지 지음 / 벨벳루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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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엄마의 부탁으로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주고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된 가은.

가끔 집에 들르는 아버지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나 저택의 안주인 연희는 처음부터 가은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고 트집을 잡아 가은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연희에게는 가은이 아름다운 장미의 옆에 기생하며 장미인 척하는 잡종의 가지, 불필요한 가지일 뿐이었고, 연희의 증오심과 학대에 가은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런 가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는 자신에게 적개심을 보이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복동생 현오뿐이었는데요.

순진한 동생을 가장하여 가은에게 남자로 자리 잡고자 은근하게 접근하는 현오에게 흔들리던 가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날 현오와 선을 넘어버리고, 그 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현오도 연희에 의해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은 끊어지게 되지만 잠시 동안의 이별이었을 뿐, 5년의 시간이 지나 탈피한 현오가 더욱 성장한 뱀의 모습으로 가은에게 찾아오면서 가은은 다시 현오에게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연희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당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가은은 연희에게 쫓기듯 독립하면서 자유를 찾기는 하지만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결벽증이 있는 연희의 트집으로 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종종 학대를 당했었기 때문에 연희에게 벗어난 지 5년이 되었어도 깨끗한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학대받은 과거 속에 머물러 있죠.

그런 상태의 가은이기에 5년간 차근차근 그녀를 옭아맬 준비를 했던 현오에게 쉽게 넘어간 것이 이해가 갔습니다. 전형적인 안돼 안돼 돼의 전형을 따르는 전개도 거슬리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저는 가은이 수동적으로 현오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가련한 이브가 아니라 뱀이 내민 것이 선악과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이브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희가 마냥 순진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론 현오가 첫눈에 가은에게 반한 것처럼 연희도 첫눈에 현오에게 반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현오의 계략이 통한 것도 있지만 가은 스스로 느끼지 못한 척 했을 뿐 이미 가은은 현오를 동생 이상의 상대로 보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 예로 학생 시절 현오가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다고 가은이 착각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자의 고백을 더럽다고 말하는 현오에게 가은은 세상에 더러운 사랑은 없다고 했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는 현오의 말에 자신은 그렇다고 하면서 너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가은이 성별에 대한 차별 없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존중하는 인물이구나 생각했는데 전부 읽고 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정하려 하지는 않지만 현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복동생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더럽지 않다는 방어적인 마음과 가은이 현오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는 가은의 마음이 은근하게 드러난 일화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은이 현오의 첫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도 연희와 아버지의 싸움을 통해 밝혀진 진실로 충격을 받아서도 있겠지만 내심 현오와 이뤄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가은이 마냥 순수하고 여린 여자였다면 현오와 함께 연희를 만나러 갔을 때 그토록 당당하게 이제 내가 당신을 괴롭힐 차례라는 말도 할 수 없었을 거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계략에 휘둘리는 여주 이야기를 싫어하는데 가은은 휘둘리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은 스스로 하는 편이라, 전반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 방이 있는 성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은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가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현오의 집착과 계략도 좋았습니다.

계략남하면 의뭉스러운 면이 잘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오가 딱 그랬어요.

순진한 이복동생을 연기하며 가은에게 접근한 것도 그렇지만 가은을 학대하는 연희에게서 가은을 지키기 위해서 연희의 관심을 돌리는 모습에서 싹수부터 계략남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에 집착하는 연희의 아들답게 현오 또한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집착과 소유욕을 보여줘서 현오의 활약으로 인해 이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가은에게 저돌적이고 강압적으로 다가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은의 경계심을 풀면서 서서히 다가가 가은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정말 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냉혈 동물이지만 가은에게는 따뜻한 뱀?

 

가은과 현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복동생의 틀을 깨야 했기에 현오의 출생의 비밀 부분은 확실히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뒤의 전개가 너무 과해서 아쉬웠어요.

특히 가은의 아버지가 알고 보니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였다는 점... 그렇게 까지 극단적으로 쓰레기인 캐릭터여야 했을까요. 어쩐지 연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장치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갑작스럽게 드러나는 아버지의 실체는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남자 때문에 가은과 가은의 엄마, 연희, 현오까지 모두 피해를 본 셈이니 악인은 아버지긴 한데요.

연희는 결국 끝까지 가은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이해는 해도 용서할 수는 없어요. 결국 당한 건 나니까. 피해자인 내게 당신은 가해자일 뿐이에요.” 라는 연희의 말처럼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희가 안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불륜, 이복형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에 비해서는 전개가 무난한 편이었지만 아버지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막장극으로 빠졌던 후반부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재회한 뒤 가은과 현오의 감정선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가은 때문에 현오의 일방적인 집착이 주를 이뤘지만, 재회 후에는 가은도 현오를 받아들인 셈인데 그 과정이 어릴 때 했던 한 가지 소원을 무조건 들어준다는 약속과 성적인 계로만 채워져서 둘 사이에 감정적인 교류가 별로 없더라고요.

마지막에 말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는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연희와 임수광의 아련한 모습이 더 주인공 같아 보여서 둘의 이야기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초반에는 두 사람을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연희의 이야기 비중이 커지면서 이야기 중심이 연희로 바뀌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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