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기묘한 그림 나라의 바네사
우오즈미 유키코 지음, 카사이 아유미 그림 / 시크릿노블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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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가면으로 자신을 감춘 채 향락을 즐기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육제의 밤, 바네사는 술김에 귀족들이 가면무도회를 하는 요정의 저택에 숨어들다가 추락할 위기에 처합니다. 발코니에 매달린 바네사를 가면의 사내가 구해주지만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웠던 바네사는 그대로 도망치는데요. 다음날 친구 알테아와 함께 다시 저택을 방문한 바네사는 남자와 다시 마주치고 술에 취해 그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제목이 기묘한 그림 나라의 바네사여서 판타지 로맨스인가 했는데 바네사와 질베르트가 처음 만난 그 순간을 질베르트가 시적으로 표현한 거였어요. 발코니에 매달려 있는 바네사의 모습이 기묘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나요~ 제목은 독특한데 내용은 신분차이가 있는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무난한 이야기라 흘러가서 왠지 속은 느낌이 들었어요.

 

바네사 나름대로 귀족 영애 행세를 했지만 진짜 귀족인 질베르트를 속이기엔 바네사는 너무 어설펐습니다. 진작 바네사가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던 질베르트는 진짜 바네사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점을 보는 거울의 저택까지 찾아가죠.

서로 가면을 쓴 상태로 만나기는 했으나 한눈에 바네사가 저택에서 만난 그 여자임을 알아본 질베르트는 슬쩍 바네사를 떠보지만 바네사는 질베르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목소리를 변조했다지만 머리카락 색이나 눈동자 색은 그대론데 두 번이나 만난 상대를 못 알아볼 수가 있나? 했는데 바네사는 못 알아봅니다... 심지어 스치듯 질베르트를 봤던 친구 알테아도 바로 알아봤는데 말이죠.

 

질베르트는 바네사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녀에 대한 호기심도 사라지리라 생각했지만 바네사를 향한 관심은 사라지질 않고, 몇 번이나 바네사를 찾아간 끝에 자신이 바네사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질베르트를 몰라보는 바네사도 답답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바네사에게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내가 바로 그 가면남이다!’ 하고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 질베르트도 답답했어요.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지 싶었네요.

질베르트가 무역업을 하면서 취미로 시집을 출판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한량 분위기가 사라지고 남는 것은 베르가모트 향 밖에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나마 바네사를 만나고 나서는 방탕했던 사생활을 정리하고 바네사에게 올인했다는 것 하나는 맘에 들었어요.

 

질베르트가 적극적인 듯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저를 실망시켰다면 좀 둔하기는 하지만 바네사는 할 땐 제대로 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엔 질베르트의 가벼운 태도 때문에 그를 믿지 못했고, 가스토네의 계략으로 백작 부인과 질베르트 사이를 오해하기도 했으나 오해가 풀린 뒤에 바로 질베르트의 집을 찾아가는 행동력이 멋있었어요.

질베르트의 집사 가스토네가 바네사를 질베르트의 재산을 노리는 거지 취급하며 돈 줄 테니 썩 꺼지라는 말을 할 때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난 내 가난한 일상이 정말 즐거워. 이런 거금 따위로 내 소소한 즐거움을 앗아가지 말아줄래?” 하고 받아치는 것도 좋았고요.


항상 돈 때문에 팔려가듯 남주와 계약 결혼하는 여주들 보다가 내 돈은 내가 번다.’ 하고 당당하게 거금을 거절하는 바네사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바네사의 소탈함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요. 특히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는 질베르트의 질문에 빨랫줄을 받으면 기쁠 것 같다고 대답한 게 기억에 남네요.

선물로 빨랫줄을 받고 싶다고 하는 여주는 바네사 밖에 없지 않을까요?ㅋㅋ 그런 바네사의 바람과 자신의 재력을 접목시켜서 질베르트가 금실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빨랫줄을 준비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누가 훔쳐갈까 봐 빨래 널어놓을 수 있을까 몰라요~

 

술김에 다짜고짜 귀족의 저택 벽을 타는 엉뚱함,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진취적인 모습, 비록 엉터리지만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최선을 다해 점을 봐주는 상냥함. 답답할 정도로 둔한 것만 제외하면 바네사는 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라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집사 가스토네의 방해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전개로 흘러가는 소설이라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봤는데요. 감정선이 모호한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호기심에서 갑자기 사랑으로 노선 변경한 질베르트도 그렇지만 바네사도 가스토네로 인해 점 보러 오는 남자=질베르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갑자기 사랑에 타올라서 의아했어요. 아무리 사랑은 갑자기 오는 것이라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작가 후기를 보면 화려한 이국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배경 묘사에 신경 쓰느라 상대적으로 스토리에 신경을 덜 썼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토리에 아쉬움이 좀 있기는 했지만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 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고, 바네사의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 괜찮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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