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BL] 오렌지와 그림자의 바다
갓노식스 지음, 고다고 그림 / 블랑시아 / 2018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부잣집에 입양된 뒤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친아들 태훈 대신 모범적인 아들이 될 것을 강요받으며 태훈의 꼭두각시로 살아온 청훈과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영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전학생 청훈이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전학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민은 청훈에게 나름대로 잘해주려 하지만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구는 청훈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껴 퉁명스럽게 대하는데요.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청훈은 오해를 살법한 영민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한 영민의 배려를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며 영민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청훈이 조심스럽게 영민에게 호감을 표현해도 영민은 틱틱거릴 뿐이라서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질까 걱정했는데, 느리지만 조금씩 영민이 청훈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이 은근 설레고 좋았어요.

특히 함께 소풍을 가게 된 것을 계기로 영민이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훈이 필통에 매일 사탕, 초콜릿 같은 간식을 채워놓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청훈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영민을 위해 마음을 접기로 하고 일부러 필통에 간식을 채워가지 않은 날, 자연스럽게 필통에 손을 넣었다가 간식이 없는 필통을 보고 흠칫하는 영민을 보면서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훈과 영민의 사이가 풋풋하고 은근히 달달해서 설레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이 비참하고 어두워서 청춘들의 사랑보다는 그들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가난과 아버지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춤을 추는 영민의 사연도 안타까웠지만, 태훈의 학대와 부모님의 방임 속에서 자신을 버리고 꼭두각시로 살아왔던 청훈이 영민을 사랑하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짠했습니다.

흔히 가족으로부터 학대당하는 주인공이 있는 학원물에서는 누군가가 주인공을 구해주면서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치트키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청훈의 발등에 있는 멍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학대로 생겼음을 알고 나서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청훈의 가족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청훈이 나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몸이 불편한 청훈을 배려해주는 것으로 도움을 주는 영민을 보며 지독히 현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고해봤자 청훈이 어디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민이 무턱대고 가족에게 따졌다간 청훈만 곤란해졌을 것 같아요.

영민 또한 아빠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청훈의 아픔을 잘 알지만 미성년자인 자신이 청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적어도 청훈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힘이 없는 두 사람이 미성년자의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본편은 멀리 떠나게 된 영민이 언젠가 자신이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두 사람이 이별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이대로 끝나면 정말 많이 슬펐겠지만 다행히 어른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외전이 있어서 울면서 책을 덮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전에서 두 사람의 상황이 크게 좋아진 점은 없고, 영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아빠나 청훈을 학대하고 학대를 묵인하는 것으로 동조한 가족들이 벌을 받는 권선징악 결말도 아니어서 끝까지 현실적인 점이 또 씁쓸하더라고요.

 

사실 전 약속대로 성공한 영민이 청훈을 찾아오는 걸 원했는데 청훈이 먼저 집을 뛰쳐나올 때까지 영민이 가만히 있었던 게 좀 속상했습니다. 정말 청훈이 마냥 기다리기만 했으면 어쩔 뻔 했냐며!

영민 때문에 좀 서운하긴 했지만 예전의 의욕 없던 꼭두각시의 삶을 스스로 버리고 영민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청훈이 정말 많이 달라져서 흐뭇하고 기뻤어요.

비록 두 사람의 삶이 경제적으로 아직은 불안정하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게 느껴져서 외전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생각해보면 파란색을 좋아해서 비보이 네임이 퍼렝인 영민과 이름에 청이 들어가는 청훈이 사랑하게 되는 건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현실적이어서 속이 시원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이왕이면 둘이 결혼하고 잘 사는 모습을 담은 추가 외전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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