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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체 게바라 의 홀쭉한 배낭 – 구광렬/실천문학사
몇 일 전 내가 사는 동네, 작은 공원에서 시 낭송회가 있었다. 개량한복 차림에 한 중년의 여류 시 낭송가, 그 분은 ‘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는 말로 인사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내 머리 속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과서 같은 소리’ 라며 반감이 드러냈다. 아마도 낮에 먹은 더위에 이상반응을 보였는가 보다. 그의 짧은 인사말이 끝난 후 그리움에 관한 詩 한편이 낭송되었는데 내 가시 돋친 생각은 교활한 박쥐처럼 금새 반대편으로 날아가더니 꺼꾸로 붙어버렸다.
맛깔스럽게 시를 읽어주는 낭송가 때문인지, 시 내용 때문인지, 한편의 시로 인해 지쳐버린 하루의 피로는 녹아 내리는 듯했다.
해가진 터라 선선한 바람이 불고 저녁을 먹은 후라서 그런지 시를 듣는 마음은 더 느긋해졌으리라. 그런데 체 게바라는 생과 사를 장담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시를 즐겼다?.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유분수지, 직접 필사한 시를 들고 다니면서 즐겼다는 것은 어지간히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름으로 추론해보면 그 것은 열악한 환경에 의해 나약해질지 모를 자신에게 자극제가 되어 줄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해서 일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상춘곡’을 외우는 사람이 있다. 잊어야 할 일들이 많은 세상,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상춘곡을 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문의 시를 외우는 것이 어렵다 생각되었지만 생각해보면 참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스트레스가 되는 일을 잊을 수 있어서 좋고, 좋은 시 한편을 암송함으로써 자신 스스로를 그러한 분위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일석 이조의 효과일 것이다. 아마 체 역시 그런 이유에서 시를 필사해서 애송하지 않았을까.
전장 속에서도 늘 책을 놓지 않았다는 체. ‘전쟁터에서의 독서, 이런 순수한 몰입의 자세가 가장 비인간적인 전투의 상황 속에서마저 한 영혼을 빛나게 하는 양분’(34쪽)이라 표현한 저자의 말과 ‘잘 훈련되지 못한 동료는 적보다 못하다’ 는 최근 보았던 영화 속 대사를 빌어 자신 스스로를 지혜롭게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주위를 독려했을 체를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지혜롭게 훈련 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체, 그렇다. 나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결국 나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담배와 책과 여자를 사랑했다는 그에게서 연민의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접하는 책과 담배와 여자는 아마도 한 인간이었던 그에게 현실을 잊게 할만한 휴식 같은 의미였으리라.
네루다의 시를 읽고 누군가에게 현실화 시키려 했던 그의 모습(132쪽), 그리고 네루다의 시, ‘이별’은 그에게 이별을 더 큰 사랑을 위해 떠나는 수순(139)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혁명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천하에‘바람둥이’가 되지 않았을까.
체가 체포되었을 당시 그의 홀쭉한 배낭 안에 들어 있었던 녹색 노트, 그 속에는 그가 평소 애정을 갖고 필사해온 69편의 시가 적혀 있었다. 이 책, [홀쭉한 배낭]은 혁명가로써 ‘그’보다는 필사된 시를 통해서 체에 재구성, 그의 삶과 죽음. 혁명에 대한 열정과 가족, 사랑. 모든 것들이 잔잔하게 녹이 있는 책이다.
많은 양의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사실적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때로는 여과없이 공개한 사제 사진으로 인해 불편하기도 하였다. 그의 평전에 맛깔스러운 에피타이저로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문수산 한 기슭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노라 했는데, 나 역시 문수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어서 그런지 더 반갑게 와 닿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