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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주차장 찾기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4월
평점 :
오한기 소설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김화진 소설가의 발문을 읽다 보니 아주 흥미진진해졌고⋯ 전우치 브금이 들려오는 착각 아래 단숨에 읽어나갔다. 나는 아주 말 잘 듣는 독자라 보통은 소설이면 지어낸 이야기구나⋯ 에세이면 본인 이야기구나⋯ 하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읽는 내내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자기 얘기 같은데⋯
연작소설집 『무료 주차장 찾기』는 같은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인 소설가 오한기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 일을 수행하는 현대인이자 육아를 도맡고 있는 아빠이다. 「무료 주차장 찾기」는 오한기의 딸인 주동이 다니는 유치원 버스가 실종되어버린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버스를 몰고 사라진 기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무료 주차장을 찾으러 갑니다.”
소설을 관통하는 ‘무료 주차장’이라는 주제와 이에 관한 문제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시 머물 곳조차 찾기 어렵다는 게⋯ 무면허에 당연히 자차도 없는 내게도 씁쓸하게 와닿았다. 주차할 자리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헤매는 시간들, 거리에 버려지는 기름, 축적되는 스트레스와 초조함 등을 오한기는 무겁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술술 풀어낸다.
71쪽
내 직업은 여섯 개다. 소설가, 드라마 작가, 아빠(?)까지는 지인들도 아는 거고. 알리지 못한 것으로는 음식 배달, 블로거, 무인문구점 매니저가 있다. 창피한 건 아니고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숲 체험」의 오한기는 여섯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무인문구점 매니저로서 하는 주된 일은 cctv를 통해 문구점 내부 감시하기. 그렇게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소설을 쓰던 오한기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인은 문구점에 방문한 여성으로, 대가를 지불할 테니 cctv를 통해 잠시 아이를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를 계기로 문구점은 보육 사업을 추진해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한기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고⋯
117쪽
그러다가 떠올린 게 작사가였다. 그래, 히트곡 서너 개 빡세게 만들고 100세까지 호의호식하는 거야. 슈퍼 이끌림 같은 조어는 나도 만들 수 있다고. 홀리 귀찮음? 메가 처절함? 와우 지랄병?
(그냥 웃겨서 발췌했다.)
「반품 알바」의 오한기는 대학 선배로부터 제안받은 ‘반품 알바’를 시작하는데, 반품된 도마뱀을 거두어들이는 일이었다. 도마뱀을 되팔아 이익을 보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더는 차에 보관할 수조차 없어 부모님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아버지의 입원으로 집이 빈 틈을 타 저지른 일이었지만 퇴원날이 다가와 도마뱀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
자동차에서부터 아이, 도마뱀까지⋯ 맡길 곳 없는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일상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낸 소설집이었다. 자신만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을 때 밀려오는 막막함이 얼마나 큰지 토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든 해결되는 것 같지만 잘 되지 않는⋯ 안 풀리는 날들 속에서 오늘도 주차장을 찾아 뱅뱅 도는 오한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