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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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소설, 잇다’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이미 이전 도서 『백룸』을 통해 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가 맞닿음으로써 형성되는 선연한 빛을 경험한 뒤라, 이번 책 역시 기대가 많았다. 김말봉 작가는 지난 학기 전공 수업을 들으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스스로 당당하게 대중소설가를 선언하며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펼쳐나간 그의 행보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김말봉 작가의 세 소설 「망명녀」, 「고행」, 「편지」를 읽으며 근대 여성의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행위가 수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앞의 두 소설은 공통적으로 구원 서사를 띠는 듯하지만 구원의 주체와 성격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고행」의 남성 인물은 자신의 불륜 행위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아내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벽장으로 숨어 들어간다. 여기서의 구원은 아내가 떠난 덕분에 남편이 무사히 벽장을 탈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루어졌고, 이는 즉 자신이 자초한 위기 상황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모면에 해당한다. 즉 스스로 행한 구원으로 볼 수 없는 반면, 「망명녀」의 구원은 다르다. 주인공 순애는 언뜻 보기에는 그를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이념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두 인물로부터 구원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순애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그녀가 스스로에게 구원받음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백룸』의 천희란 작가가 현대의 서사로 근대 여성인 이선희 작가의 소설을 조명하고자 했다면, 『기도를 위하여』의 박솔뫼 작가는 김말봉 작가가 소설을 집필했을 순간을 끊기지 않는 선으로 이어 현대에까지 도달시킨 듯한 서사를 펼쳐낸다. 소설 「망명녀」를 이어 쓴 박솔뫼 작가의 소설 「기도를 위하여」는 사그라들지 않는 존재의 빛을 포착해낸 소설이자, 세상을 걷는 모든 존재들에게 보내는 찬사와도 같다.

p.131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갈 것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말을 순애에게 하고 싶었지만 순애의 앞으로의 삶에 어떠한 말도 더할 수 없었다. (중략) 앞으로의 일이나 신념에 자신이 없어졌다기보다 삶이라는 것이 예상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안개처럼 번지는 희미함이 늘 삶과 함께하리라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박솔뫼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게 희미한 것으로 느껴지다가도 결국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작가는 희미와 불분명으로 삶의 선연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소설은 때로는 무용해보이는 것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삶을 온전하게 채워준다는 사실을 상기해준다.

김말봉의 글씨와 박솔뫼의 걸음이 겹쳐지는 순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칫 흐려질 뻔한 존재들을 강력히 조명하며 애정과 신념의 서사를 펼쳐나가던 두 사람을 생각한다. 두 여성이 각기 다른 시간 속을 부단히 걷는 상상과, 그 기나긴 산책 속을 스쳐지나간 모든 것들에는 분명 알맞은 이름이 붙었으리라 하는 예감.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서로 손을 마주잡게 된 두 서사가 밝혀내는 빛은 아주 희미하고 또한 그래서 아주 눈부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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