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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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1』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명성을 알린 ‘교토의 천재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이다.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정도로 그 인기를 입증한 이 작품은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며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유쾌한 가족 판타지다. 개인적으로는 개정판 표지 디자인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도 표지 속 인물들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소설에서는 너구리, 덴구,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 존재성이 서로 긴밀하게 얽힌 채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떤 모습으로든 자유롭게 둔갑하는 너구리와 하늘을 비행하며 신비한 재주를 부리는 덴구가 등장하는 독특한 판타지 세계, 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신묘한 기술도 긴박한 전투도 아닌 ‘가족애’이다.

시모가모 가 형제들은 위대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그들에게서 위엄 있는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첫째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분투하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둘째는 모든 책임을 뒤로한 채 우물 안 개구리로서의 삶을 택한다. 주인공 셋째는 재미만을 좇는 개구쟁이인 데다가 막내는 아직 두려운 것이 너무나도 많은 소심한 어린아이다. 각양각색의 사형제 중 히키코모리 둘째에게 가장 관심이 갔다.

p.79
“형은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아?”
내가 물었다.
“남의 일은 내가 알 바 아니니까. 게다가 때론 고민을 들어주는 쪽이 친절하게 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을 거야. 그래서 다들 나를 찾아오는 것 아니겠어?”
“그런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이야기지.“

보잘것없는 너구리에서 모두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까지. 어쩌면 형은 우물 속 개구리로 사는 것이 더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주인공의 말마따나 둘째는 개구리 생활을 누구보다 만족스럽게 즐기고 있었다. 개구리가 된 둘째는 누군가가 아무리 고민을 늘어놓아도 결코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타자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물 안 개구리를 찾아가게 만드는 매력적 요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선과 악을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내며 악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통쾌함을 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빛나는 가족애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모한 짓이라도 벌일 준비가 된 형제들의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쩌면 시모가모 형제들을 강하게 만든 건 그들의 몸에 흐르는, 주체할 수 없는 ‘바보의 피’가 아닐까.

작가정신 블로그에서 책 소개글을 읽던 중 ‘겨울을 앞두고 살이 통통 오른 너구리처럼 푹신푹신 푸근한 소설’이라는 구절을 보고 웃으며 인정했다. 어쩌다 보니 새해 첫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바보 같지만 용감하고 한심하지만 사랑스러운 너구리 가족을 만나 따뜻한 마음으로 새해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두꺼운 책을 안식 삼아 편안히 읽어나가면서 생각했다. 바보처럼 자주 손해를 보면서도 지키고자 하는 것을 끝내 지켜내고야 마는 너구리 형제들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보다 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가는 한 해를 보낼 수 있겠다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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