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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그런 나는 없다
홍창성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평점 :
스님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서양철학자, 미네소타주립대 홍창성 교수가 풀어낸 무아(無我)의 철학적 해석. 철학은 논리적으로 모순을 초래하는 개념에 해당하는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자아(self), 영혼(soul), 참나(眞我)가 모두 논리적인 모순으로 밝혀진다면, 진정한 나는 과연 무엇일까?
-출판사 소개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오류와 문제점에 대해 논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나의 존재’가 정말로 확고부동한 진리인지에 대해 4가지의 조건을 토대로 자세히 설명한 뒤, 그 결론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교의 ‘무아’ 개념을 끌어낸다. 책 내용에 따르면 무아란 원래 ‘진정한 자아 또는 참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뜻한다. 저자는 이러한 무아 개념에 대한 현대적 관점에서의 논의를 목표로 책을 저술했다.
우선 좋았던 점은 철학책 치고 두께가 매우 얇다는 점이다.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두껍고 빽빽한 분량의 철학책은 선뜻 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감상인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완벽히 보완했다고 생각된다. 얇고 가벼우며 단단한 양장본에다가 가독성 좋은 내부까지, 독자의 읽기 욕구를 충족할 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또한 책의 차례가 <나는 누구인가 - 자아는 모순이다 - 붓다의 무아 - 철학의 무아 - 반론들 - 다시 나를 찾아서>와 같이 간결하고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기에도 용이하고 책을 완독한 뒤에 흥미로웠던 내용을 다시 찾아 읽기에도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철학의 무아>였는데, 앞서 자아의 의미와 그 개념적 모순에 대해 밝히고 붓다의 무아 개념에 대해 설명한 뒤, 해당 파트에서는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무아 개념을 논한다. ‘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 뒤, 몸과 마음이 실재하는지에 관해 논하는 과정에서 그 경계가 불분명함을 입증하고 따라서 몸도 마음도 실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논리적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도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몸도 마음도 결국 실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주장이 다양한 논리적 설명으로 완벽히 뒷받침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불교 철학’이라는, 어쩌면 깊고 심오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쉽게 가닿는 방식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읽기에 불편할 만한 장치는 가급적 피하고 간결한 문장과 적극적인 서술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철학 입문자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잘 이해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논의 내용을 가볍게 처리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임을 고려하면 최선을 다한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P.157
그런데 우리는 이런 속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개개인이 궁극적으로는 아뜨만 혹은 영혼이 없는, 즉 공한 인격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한다. 이것이 불교가 가르치는 내 존재의 양상이다.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한다’는 마지막 구절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다. 자아는 실재하지 않을지언정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지금,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것. 무아의 개념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불교가 가르치는 내 존재의 양상이 이러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전부 이해가 됐다. ‘공한 인격체‘라는 말이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겁고 숭고한 일인지. 우린 계속해서 존재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