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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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환대>는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장희원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좋아하는 단어인 '우리'와 '환대'가 합쳐진 제목이라 지나칠 수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책 디자인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아서 마음이 갔다. 제목에 비해서는 다소 쓸쓸한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대상의 부재나 완전한 상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기쁘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는 '쓸쓸한 곳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스며 있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에서 재희는 눈이 내린다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이를 불씨로 여긴다. 그는 '어쩌면 반짝이는 그 찰나의 빛으로 주변을 다 태울 수도 있을' 불씨를 보며 불길 속에서 소리 없이 허물어지는 존재를 상상한다. 공통의 상실을 겪은 둘이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감정을 느낀다. 이처럼 이 소설집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같은 부재를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이는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또렷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대상의 부재 이후에 남는 것들에 대해 애써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여줌으로써 다양한 해석과 감상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공통의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그렇게 남은 사람들끼리는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환대>에서 영재와 하우스메이트들은 그의 부모님의 방문에 직접 차를 운전하거나 식사를 내오는 등 계속해서 밝은 표정으로 그들을 환대한다. 그러나 영재의 부모님은 애써 멀리하던 아들의 모습을 직면하고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표현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이 입안에서 맴돌다 다른 형태로 게워졌을 때, 그들은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영재는 아버지의 폭력을 계기로 점차 가족이라는 우리에서 멀어지다가 새로운 '우리'에 정착하게 되고, 부모님은 그들의 '우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영재를 지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똑같은 상실을 겪은 두 사람 또한 함께일 수는 없다. <폐차>의 형제 또한 같은 결핍을 겪었다고 여겼지만, 형은 되뇌이지 못하고 동생만이 생생하게 기억해내는 아픔이 존재함에 따라 공통의 결핍도 무너져내린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고서야 완전한 이해는 불가함을 일깨우는 부분이다. 그러나 형은 동생과 눈을 마주하지 않음에도 그들이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고 여기며 그를 돕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비단 동생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포근한 겨울에 알맞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 속 활자들은 나를 환대하지 않았고, 다만 더 깊고 먼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에서는 사라진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과 이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 잔재를 버거워하는 사람과 소중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별이 보편적인 슬픔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며 상실이라고 다 같은 상실이 아님을 드러내는 이 소설집은, 그럼에도 결국 우리가 우리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우리로 남았다고 해서 상실감이 덜어지거나, 우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괴로움이 더해진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실을 겪은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전부 긍정한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책 속에 숨겨진 희망을 찾아낼 수 있었고, 작가가 담담하게 건네는 위로를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은 대상의 부재로 인해 남겨진 모든 사람들이 편견과 오해 없이 오롯한 방식으로 이해되길 염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멸의 뒷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라짐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로부터 어려움 속에서도 '타인을 환대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찬 바람이 깊숙이 들어오는 겨울이면 종종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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