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1
김경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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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었을 법한 말이다. 나의 창작은 아닐 테다. 책 끝에 역사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협상의 관점에서 전쟁을 보자는 저자의 제안을 읽다가 문득 떠올랐던 문장이다. 문법에는 의미상 맞지 않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적 사실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므로 과거가 현재고 미래라는 의미, 역사는 과거의 사실로 끝나지 않고 현재로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진행 중에 있다는 의미의 문장이다. 허세와 협상을 읽는 내내 현재의 남과 북, 그리고 미, , , 일 관계를 되새긴 과정을 압축해서 표현하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료를 근거로 한 세밀한 교섭 과정 묘사에 놀랐다. 참고문헌을 보니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줄인 책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했다. 그렇다면 더 놀랍다. 역사서답지 않게 긴장감 있는 줄거리로 논문을 요약했기 때문이다. 관련 논문이 여섯 편에 달할 정도이고 중국과 일본의 문헌을 샅샅이 훑었음을 문헌 정보로 보니, 200쪽도 안 되는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아주 단단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허세와 협상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이란 부제에도 독후감으로 공모한 도서 중에서 가장 역사서답지 않은 제목을 단 책이었다. ‘허세라는 단어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지 않고 서사가 있을 것 같았다. ‘타협이란 단어에서는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개인의 공허한 성공담이 아닌, 역사적인 교훈이 있겠다는 추측을 했다. 이익을 다투는 개인 간 또는 집단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치열하게 논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의심만이 살 길이다!)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다는 점에서, 선택을 잘 한 내게 자찬(自讚)했다.

의심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의심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 파악이 중요하다는 점을 책 곳곳에서 확인했다. 첫 장의 세 번째 문장, ‘변하지 않은 사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군사를 동원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이웃나라인 조선을 침략하였다.’를 읽은 직후 사실이 주는 힘을 느꼈다. 연이어 저자는 우리가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때에는 반드시 이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라고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한다. 400여 년 전 그 시기에는 시간을 1일 동안 걷거나 뛰거나 말을 타고 갈 거리를 단위로 삼아 가늠했으니, 허세가 가능한 것도 사실 파악이 늦거나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겠다. 물론,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가짜 뉴스로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사실 파악 전에 사건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떤 결정 건에 사실은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었으니 교섭 담당자는 비상한 추론 능력이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사실의 중요성은 다음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은 조선 땅이 매우 넓고, 조선인과 말이 통하지 않고, 조선인은 일본인을 해적이라고 여기며 도망치거나 공격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조선의 보고를 명은 일본군이 평양까지 접근한 상황에서 받았다. 명은 조선이 일부러 보고를 늦춰서 조선이 일본과 합세해서 자기 나라를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는 데 17개월이 걸렸다. 그만큼 전쟁은 길어졌다. 159895일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철수 명령이 101일 부산에 도착했는데, 명군의 공격이 끝난 시점이었다. 명군의 참모 임무를 띤 정응태가 조선을 모함한 것도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가능했다. 이 모두 교섭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이다. 저자는 자신이 인식하고자 하는 모습으로만 남을 인식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을 보고자 한다는 모든 인간이 지닌 관점의 보편성을 전제하면서 사실을 강조한다. 식상한 말이지만 역사서에서 읽으니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쟁을 시작하면서 교섭이 곧바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교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비물리적인 전쟁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기만(속임수)과 협박, 탐색과 의심으로 가득한 또 다른 전쟁인 것 같다. 기만과 협박은 허세로 드러났고, 탐색과 의심은 교섭을 타협으로 이끌었다. 전쟁은 승리와 이익만을 기준으로 도덕을 가늠하는 극단적인 윤리적 이기주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화와 협상은 전쟁 전부터, 전쟁 시작 직후부터 끝날 때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전쟁 중에 죽고 다치는 군인과 민간인이 누리지 못하게 된 존엄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 협상을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인지, 전쟁을 위해 협상을 하는 것인지, 무엇이 주()이고 객()인지 전쟁은 이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전쟁의 한 면은 파괴지만, 다른 면은 생산일까. 십자군 원정이 기독교 문명의 자폐를 치유하고 이슬람으로부터 기독교 문명이 고대 그리스 문명을 접하게 된 계기라고 해서 그 전쟁의 처참함이 결코 덜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7년 동안 진행된 전쟁이 이질적인 삼국이 교류하는 장을 열었다고 해서 그 전쟁을 칭송할 수는 없겠다. 전쟁을 협상의 관점에서 본다 해도 그럴 수 없다.

무례한 행위의 역사를 읽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강제 징용 배상과 관련해 한국의 주일대사와 넥타이도 매지 않은 복장으로 면담하는 자리에서 대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자국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쏟아 냈다. 그 무례가 이 책 여기저기에서 겹쳐졌다. 전쟁 전 교토에 도착한 조선의 통신사 일행을 기약도 없이 기다리게 한 히데요시의 행위며, 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화평 조건에 ‘~ 그에 따라서 (조선을) 용서하기로 한다.’ 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또한 히데요시가 명의 책봉을 받은 후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사은표문에 ‘~ 조선이 일본과의 약속을 어겼으므로 공격하였고라는 부분은 아베 정부가 한국과의 무역 분쟁을 한국 정부의 약속불이행 탓으로만 돌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북한과 미국 간 핵무기를 둘러싼 협상에서 남한의 위치는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 침략 전쟁을 두고 벌인 교섭에서 조선이 서 있던 자리와 같아 보였다.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의 전사(前史)와 징조를 보는 듯한 내용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꼈다. 조선 침략 1년이 지나 명나라 사절이 히데요시에게 항복 문서를 받기 위해 일본 나고야에 갔을 때, 히데요시는 영토보다는 혼인을 앞세운 7개의 강화 조건을 제시한다. 이를 저자는 일본이 조선 영토를 지배할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점거하거나 점거할 수 있는 실력이란 군사력으로 제압한 후 백성들을 지배하고 재생산 구조를 갖추기 위한 행정 시행 능력을 뜻하는데, 일본이 그 당시에는 그런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임진년 조선 침략과 점령에 실패한 후 300년이 지나 조선을 강제로 점거한 데 성공한 이유는 그 능력을 갖췄기 때문인가?

한편, 일본은 명군에게 일격을 당하고 조선의 저항을 견디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퇴각하였으면서도 명나라에는 명의 명령에 따라 조선 영토를 돌려주고 후퇴하였을 뿐이라고 허세를 부린다. 그러면서 북쪽의 4개 도와 수도는 명에 속하고, 남쪽의 4개 도는 히데요시에게 속한다는 영토 분할을 제시한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힘겨루기를 하게 되면 그 틈에 놓인 반도 국가는 분단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현재의 남북 분단이 필연으로 다가온다.

히데요시는 선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축제로 환심을 얻는 기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히틀러와 괴멜스가 히데요시를 공부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과거의 어떤 지점부터 현재까지 그 모습, 그 모양대로 진행 중에 있는지 모른다. 인간이 변하지 않은 이상 역사는 이대로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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