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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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뼈에 사무치다' 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사람의 살을 넘어 그 단단한 뼈에 각인될 정도로, 아프거나 통한을 느낄 때 많이 쓰죠.

그런데 이 뼈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언해야 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아산 신창 학살터에서 발견된 유골 'A4-5' 를 비롯한 많은 학살 피해자들입니다. 이젠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은 약 7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데, '본 헌터' 는 이들이 빛을 보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됩니다.

1950년 아산에 있었던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들이 뼈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와,

그 뼈를 찾아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인류학자 박선주가 어떻게 이 일에 나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며 이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한국전쟁 초기의 학살이라는 말만 듣고 이 학살도 단순히 '보도연맹이었겠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작 아산 지역은 1950년 7-8월 보도연맹 학살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피를 덜 본 반면 국군의 반격이 본격화된 9월에 학살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즉, 북한군 점령시에 아산, 신창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부역자로 몰려 변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보도연맹' '인민재판' '국민방위군' 이라는 특정 키워드로 한국전쟁의 여러 비극들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근시안적임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단 그런 암기 위주의 단어로 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가져왔고, 그 비극 또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피를 뿌렸습니다. 단순한 선악 나누기, 흑백논리가 아닌 감춰진 더 많은 진실이 있음을 이 '뼈' 들이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天農, 즉 천안농고의 로고가 새겨진 뱃지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에 전념하던 어린 학생들마저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려 산에 끌려갔고,

거기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학력조차 충분히 엘리트 취급받을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차마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이렇게 억울하게 희생된 어린 영혼들의 한이 얼마나 될지 추측조차 힘드리라 봅니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유해도 없이 단지 저 단추 하나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언해야 했으니,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뿐만 아니라 단지 비녀만 발굴된 여인,

치아 몇 개만 남았지만 발굴 관리 과정에서 그 치아마저 사라져버린 사람,

심지어 차마 세상빛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해된 태아까지,

뼈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비극을 차마 '뼈에 사무친다' 라는 표현 하나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다만 마지막에 갑자기 지금의 정치 이야기를 끌고 오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분명히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어 했겠지만, 굳이 여기에서 정치를 다뤄야 했을까, 함께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또 다시 정쟁의 소모품으로 써야 했을까,

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역사적 비극들이 세밀한 탐구 없이 단지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비난의 도구로만 쓰이는 건, 역사와 정치의 결합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하는 지를 말해주는데요.



비유하자면 기껏 탕수육을 맛있게 튀겨놓고, 거기에 주방장 마음대로 소스를 부어버린 꼴이라고 봅니다.

이러면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은 또 다시 찍먹과 부먹파의 소모적인 논쟁으로밖에 흘러가지 않고, 그 사이 탕수육은 식어서 탕수육 자체에 대한 평가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 하필이면 사족을 달았는지, 1950년대의 비극에 또 2024년의 정치 비판을 해야 하는지, 정말 아쉬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옥에 티' 만 아니면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두 이야기를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은 정치나 기타 요소를 떠나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구성 자체는 정말 좋았어요.

부디 앞으로도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져, 이들의 '뼈에 사무친'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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