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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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 입니다.


TV, 유튜브를 켜면 언제 어디서든지 식사 장면이 나오고,


맛집에서 인스타그램을 켜서 인증샷을 찍는 건 이제 없으면 이상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서울이 아닌 경성을 살았던 시민들은 과연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즐겼을까요?



이 책 '경성 맛집 산책'을 통해 그 편린을 따라가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양식당으로 알려진 청목당,


경성 제일의 일본요리옥으로 알려진 화월,


마트 푸드코트의 시초인 미쓰코시, 화신백화점 푸드코트,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음식점 이문설농탕,


이 모두를 한 권의 책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문설농탕 한 곳을 제외하면 이 책에서 소개한 음식점들은 지금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음식점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문학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식사 장면을 살펴보며, 음식점의 메뉴와 구성, 서비스 등을 대략적으로 유추해내는 거죠.


예를 들어 경성 최고의 냉면집으로 알려진 '동양루' 는 지금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1926년에 나온 김낭운의 소설, '냉면' 입니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 순호는 박봉의 기자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냉면을 먹습니다. 이 때 동생에게 부탁해 배달을 시키기도 했는데, 당시 경성에서 냉면은 지금의 짜장면 포지션인 대표적인 배달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가는 줄무늬 옷을 입은 배달원을 흔히 볼 수 있었죠. 또한 냉면 한그릇의 가격이 20전 수준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호는 생각보다 많이 나온 외상값, 아내의 등쌀 때문에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냉면을 먹지 못하고 그릇을 발로 차 버립니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냉면을 먹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소시민들의 애환은 물론,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해야 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 하나로 동양루로 대표되는 경성의 냉면 배달업은 물론, 당시의 사회상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 책에선 여러 맛집과 문학작품들이 모자이크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며 등장합니다.


미쓰코시 백화점 식당 소개는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에서,


경성을 대표하던 고급 중국집 '아서원' 의 소개는 또 다른 그의 소설 '밀림' 에서,


디저트 카페 '가네보 프루츠팔러' 의 소개는 김남천의 연재소설 '사랑의 수족관' 에서 따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생소한 문인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행적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이렇게 여러 소설들과 함께 맛집을 탐방하는 본서는 단순한 맛집 소개를 넘어 근대문학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책이라고도 평하고 싶습니다.


원래 글 하나는 정평이 난 작가들이기에 보면서도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드는 음식 묘사도 있고,


서민과 지식인들의 애환을 음식을 통해 녹여낸 작가들도 있습니다.


이걸 쭉 읽고 있다 보면,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들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만 음식점 탐방기라는 특성상 완전한 서민들의 이야기는 별로 없는데, 당시 서민들 입장에선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는 것은 정말 사치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모자란 게 이들의 형편인지라 설렁탕 정도를 제외하면 외식 자체가 그림의 떡이었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소위 '기득권층' 의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이 역시 일제시대 생활상의 일부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0년 전 경성 맛집이 궁금하신 분은 물론, 당시 신문의 연재소설을 통해 문학의 세계를 엿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지갑과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비슷한 음식을 찾아 먹어보는 것도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책을 즐기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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