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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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치와 히틀러의 온갖 인종주의적 만행에 대해서는 이제 더 알려질 것도 없을 정도로 충분히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대놓고 아이들을 우량/열등 인종으로 가른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적게 받은 편이었습니다. 이 소름끼치는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 하나, 장차 세워질 나치의 천년제국을 '순수한 아리아 인종' 으로만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치 우생학이 '나쁜 피를 제거' 하는 과정이 홀로코스트라면, 레벤스보른은 '좋은 피를 보존' 하는 차원의 또 다른 형태의 홀로코스트나 다름없었습니다.



독일어로 '생명의 샘' 이라는 뜻을 가진 레벤스보른은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이뤄졌습니다.

먼저 '진정한 아리아인'으로 인증된 여성과 남성(주로 친위대 장교)이 단순히 관계만 맺고 태어난 아이를 하인리히 힘러의 이름 하에 나치에 '봉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이 전쟁 중에 점령한 점령지 주민들의 아이들 중 '아리아인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특별히 선별하여 원래 부모에게서 강제로 납치하여 독일 본토 아리아인 가정에 위탁하여 키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둘 모두 과정은 달랐지만, 아리아인 혈통에 극도로 집착한 나치가 낳은 사생아라는 점에선 비슷했습니다.

즉 이 책의 제목처럼 '히틀러의 아이'가 되었던 셈이었습니다.



저자 잉그리트 폰 묄하펜은 '레벤스보른'의 피해자가 되어 자신의 뿌리도 잊고 전혀 다른 사람을 부모로 알고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언뜻 보면 평범한 전후 독일 가정의 흔한 소녀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증 등의 신분증에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이름, '에리카 마트코' 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살던 어머니 역시 이상하리만치 '딸이어야 했을' 잉그리트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물리치료사가 되어 여러 아픈 사람을 도와주며 이를 잊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이런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성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해준 채 세상을 떠난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애씁니다. 독일 통일 후 상당한 양의 기록물과 정보들이 공개되지만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자료를 찾는 것은 산 넘어 산이었고, 심지어 독일 정부 차원에서 기록물 접근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잉그리트는 자신은 원래 1942년 즈음에 지금은 슬로베니아 땅이 된 '첼예' 지역의 마트코 가에서 태어난 '에리카 마트코' 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마트코 가족과 만나기도 하여 약 50여년 만의 혈육 상봉을 이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잉그리트의 경우는 굉장히 예외적인 케이스로, 실제로는 자신의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가정을 잃고 살아가는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수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레벤스보른의 총책임자인 하인리히 힘러는 '장차 독일을 이끌어나갈 위대한 아리아인'을 양성하기 위해 이렇게 멀쩡한 가족까지 파괴해가며 순수 아리아인을 양성해냈는데, 과연 그렇게 태어난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힘러의 기대처럼 사회 지도층까지 올라 아리아인의 위대함을 증명했을까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50여년 만에 서로 만나게 된 레벤스보른 피해자들은 그냥 평범한 독일 소시민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으며, 오히려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가족과 떨어진 것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결국 레벤스보른은 서로 생이별을 해야 했던 부모와 자녀들의 마음 속에 깊은 그림자만 드리웠을 뿐, 원래 목적인 우생학적인 목적은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고 있을 힘러가 이 장면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레벤스보른의 희생양이 된 잉그리트의 행적을 직접 따라가 봄으로서 홀로코스트의 뒷면에 있던 또 하나의 우생학의 만행인 레벤스보른을 하나부터 열까지 조명하고, 그들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 아픈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게 남겨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까지 전부 들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치가 집착한 '아리아인의 순수성'이 낳은 광기의 편린을 직접 전달해주는, 상당히 가치있는 사료로서의 가치까지 갖춘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04317)에 응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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