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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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리더십이 부재한' 세계가 찾아왔습니다. 전 지구를 덮친 범유행성 전염병은 지금까지 감춰졌던 비전의 부재와 지도자의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양반은 이 질병을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떠들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강한 미국'을 표방하다가 기어이 자신이 그 질병의 덫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죠.
그리고 이에 맞먹는 중국 서기장이라는 양반도 이 질병을 전 세계로 퍼트린 책임을 전혀 지지 않은 채 독재로 국민을 탄압하고, 민주화의 목소리에 총칼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한다는 두 나라의 지도자가 이모양 이 꼴인데, 나머지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라스트 캠페인'은 로버트 케네디라는 인물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의 리더십을 조명하며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라는, 지금 시국에 딱 맞는 질문을 던져 줍니다. 마침 그가 나타난 1960년대 후반도 지금처럼 여러 사회문제가 부각되는, 리더십의 시험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죠.

로버트 케네디의 행보는 형 JFK와 유사한 점이 많아보이기도 합니다. 40세 전후의 젊은 나이에 민주당의 기수로 나서고,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인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했으며, 권위적인 기존의 대통령상을 탈피해 국민 가까이로 다가가는 친근한 대통령상을 추구하는 등, 케네디가의 핏줄은 속일 수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최후도 형을 그대로 따라간 셈이 되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가 형의 복사판이라던가, 형의 후광에만 의지하는 영합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는 못다한 선거운동 기간 동안 형을 본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다가갔고,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인 키워드가 '눈물'입니다. 그는 인권을 위해 싸운 킹 목사의 죽음부터 한 인디언 아이의 죽음까지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그들의 삶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눈물이 많은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의 눈물 속엔 단순한 슬픔만이 아닌 '더 나은 미국'을 만들기 위한 다짐이 들어있기에 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베트남전 등의 형의 실책을 무조건 옹호하기보단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형의 한계를 극복하며 자신은 자신의 방식대로 미국을 이끌 것이라는 포부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단지 JFK의 동생,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아닌 인간 '로버트 케네디'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의 진가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책을 보게 되면 로버트가 유세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고, 손을 잡아주는 장면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로버트의 지지자들도 이에 응답하여 열렬히 손을 흔들어 주죠. 정말 애석하게도 그의 마지막도 한 소년에게 손을 뻗어주는 과정에서 이뤄졌으니 그의 손이 가진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나이, 인종, 지위에 상관하지 않고 이렇게 손을 뻗는 것, 이것이 당시 로버트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누군가가 손 한번 잡아주고, 한번 등을 토닥여주는 것에 더 힘이 났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당시 미국에서 소외당했던 사람들도 이렇게 누군가의 손길을 원하고, 자신들의 처지에 조금이라도 공감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로버트는 편견 없이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입니다. 지금은 정치 유세장에서 손을 잡고 악수하는 게 별일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당시 미국에서의 악수는 분명 무게감이 달랐을 겁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까지 당선된 대체역사에서 미국의 문제가 눈 녹듯 전부 사라지는 것은 힘들었을 겁니다. 분명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어도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쳤을 것이고, 이 문제에 맞서 그가 어떤 대처를 했을지는 우리의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정히 말하면 로버트가 대통령직을 무조건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는 보장은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도 사람인 만큼 여러 결점들도 있었으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링컨 대통령을 연상케 할 만큼 길다란 행렬이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로버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으로도 우리가 그를 재조명해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는 어쨌든 혼란스러운 1960년대 미국에서 국민들의 대안이 될 리더십을 제시했고, 이를 해결하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으니 말입니다. 말로든, 손으로든, 의지로든 말이죠.

그의 사망으로 이 리더십은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나 버렸지만, 지금까지도 로버트를 본받아 더 나은 미국을 만들겠다는 정치가들이 많은 것을 볼 때 로버트의 미국은 미완성이어서 더욱 아까운 '가지 않은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길이 지금의 '닉슨을 선택한 미국'보다 나은 길이라고 확답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로버트의 미국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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