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천선란 지음, 조은솔 외 낭독 / 허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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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단에서 상을 받는 한국 SF는 패턴이 있다. 

좋게 말해 일상 SF소품집들이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SF를 패션으로 걸친 평범한 청소년 소설. 


이들의 전략은 <우리 삶을 다른 각도에서 낯설게 바라보기>로 요약된다. 

SF적 요소는 <현대의 우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줄 배경을 위한 장치 정도에서 머문다.

이들 작품들의 상당수는 배경과 소재를 조금 바꿔서 현대물로 교체해도 어떤 이질감이 없는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책들을 읽는데 독자는 어떤 선행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 

책의 과학적 기반이 얕기에, 책에는 어떤 주석도 불팰요하다.

그 토대에서 뿌리내린 상상력도 딱 그만큼 기대할만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상투적인 SF요소들과, 그렇고 그런 청소년소설류의 감수성들.

가끔 예전 SF선집에 끼어있던 이런 뭉클하고 생활밀착적인 SF소품들은 신선했고, 좋았다.

그런데 이런 소품이 "주"가 되버린 요즘 한국 문단의 유행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이들 소설이 바라보는 미래에는 "전망"도 "상상력"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SF의 외피를 쓰고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태도는 견딜 수가 없다.

1950~60년대 소설과 문화의 단골 아이템이던 인간형 로봇이 여전히 50년도 구닥다리 그 모습 

그대로 2021년 편의점을 지키는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건 너무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형용사와 동사를 낮설게 읆으며 인간을 이해하고 자연을 찬미하는 '로봇의 학습과정'은 권태롭다 못해 우울하다.

단지 몇몇 요소가 기계화되었을 뿐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우리세계가 SF라고 소개되는건 서글픈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이들 소설이 문단에서 각광받는 건 그 노스텔지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뉴럴엔진이니 A.I니 암호화니...

세상의 대다수가 기술 전반을 용도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두가 구닥다리가 된 지금. 

모두가 쉽게 그릴 수 있는 익숙한 판타지는 위로를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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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시 2021-06-0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맞는 말씀이시네요. 애초에 천선란 작가는 SF 소설을 지향하던 작가가 아니었고, K-SF 라고 하는 것들이 전부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 에서 감정을 배워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성장소설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에서는 복제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하지만 SF적 이해도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장르를 SF라고 제한하진 않지만요. SF 소설 자체가 치밀한 설정을 바탕으로 기시감을 주는 장르이긴 하기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장르를 국한하는 것에 따라 온전한 무엇인가는 받아드리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ㅎ

2021-07-2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글님의 리뷰에 구구절절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어찌나 재미가 없던지...‘에셔의 손‘은 별 다섯 개, ‘기파‘는 별 네 개, 이 작품은 별 하나도 아깝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SF의 성향이 자꾸 한 쪽으로만 흐르고 있어 정말 맘에 안 드네요. 출판사 편집자들, 독자들이 다들 하나의 감성으로 움직이니... 읽다 읽다 질리고 색다른 작품을 찾다 찾다 지쳐 자빠지겠어요.

VQ35 2023-03-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공합니다. 저도 느꼈던 바를 유려한 필체로 그대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최사랑 2024-05-24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00% 공감합니다. 특히나 각 인물들의 ‘사연‘이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