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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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가제본)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성해나 작가님의 첫 기담집 『인비인』은 속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로 엮인 소설이다. ’어제’ 챕터에는 과거의 이야기를, ‘오늘’ 챕터에는 현대의 이야기를, ‘내일’ 챕터에는 미래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제본에서는 각 챕터마다 한 편씩, 총 세 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 ’어제’ 챕터의 「인비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책의 제목과 동일한 이 작품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인비인」은 1945년을 배경으로 한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던 청년은 자신이 존경하는 교수와 함께 하얼빈으로 향한다.

ー교수님, 지금 어디에 가는 겁니까?

ー통나무를 모아두는 곳.

청년이 보게 된 ‘통나무’는, 고문 틀에 매달린 사람, 산 채로 해부되고 있는 사람, 포르말린 용액에 보존된 사람의 박제였다.

이곳에서 실험을 당하던 여자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산하고 즉사했다.

ー여자가 낳은 건 참으로 곤란한 생명체였습니다. 치댄 밀가루를 얼기설기 뭉쳐놓은 형태에, 눈도 귀도 없었습니다. 얼굴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코와 입만 겨우 붙어 있었죠. 팔다리도 없고, 생식기조차 달려 있지 않아 자웅을 구별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굳이 종을 나눠야 한다면, 척추가 있는 환형동물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온몸이 잿빛 털로 덮인 2.6킬로그램의 굴곡 없는 덩어리, 그것이 가타마리였죠.

통나무를 일본어로 말하면 ‘마루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에 담긴 비극을 알고 있다.

고해성사하듯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 「인비인」은 순식간에 이야기의 끝으로 이끌었다.

인간은 누구이고, 비인간은 누구인가.

나는 가타마리를 차마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인체 실험을 자행하던 그들에게도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다.

인간이 가지는 본질은 무엇이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본질은 또 무엇이며,
인간을 인간답도록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비인』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하는 괴담이나 그들로 인한 괴이한 현상을 담은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해나 작가님의 기담집은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어려운 질문을 남겼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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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다면
고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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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잇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느 날, 하루카를 찾은 그의 조카 지카게는 수신인이 비어 있는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그 위에는 ‘하네다 아키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죽기로 결심한 지카게는 마지막 할 일로 심장이 좋지 않은 하루카를 위해 ‘하네다 아키하’를 찾아 오사카로 떠나게 되면서, 이 소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키무라 하루카, 봄. 그리고 하네다 아키하, 가을.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나게 된 둘.
하루카는 아키하의 이름을 듣자마자,

ー“아키하, 결혼하자!”

프러포즈를 한다.

ー“봄과 겨울을 잇는 건 여름과 겨울.”

이 소설은 아키하가 하루카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하루카가 아키하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문장이 무척 섬세하다.

ー표류 끝에 마침내 해안에 다다른 듯한 환희와도 같은 이 안도감은, 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두 사람에게도 이별의 순간은 찾아왔다.

ー“당신의 슬픔에 사랑으로 다가간다.”

모두가 아키하에게 포기하라고 말할 때, 하루카만은 그가 포기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다. 하루카는 아키하의 슬픔에 용감하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 서로에게 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아키하가 느끼는 상실감은 지독할 만큼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나는 행복했던 순간들은 떠올릴 수 있어도 그 순간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이름 붙여본 적은 없었다. 너무, 너무 철학적인 개념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거창한 개념이 아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가까운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ー“살아 있기 때문에 슬픈 일이나 절망스러운 상황을 겪게 되는데도?”
“살아 있지 않으면 슬픔도, 절망도 극복할 수 없어.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감동과 기쁨, 그리고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살아만 있다면, 사랑도 시작할 수 있다.

살아 있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하루카와 아키하의 사랑은 결코 행복하기만 하지 않았다. 갈등이 있었고, 상처를 주고 받았으며, 절망과 이별이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있는 이 순간에, 살아있기에 모든 감정을 단단히 타래로 엮어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이 소설은 모든 살아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약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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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했던 여름 ㅣ 래빗홀 YA
이로아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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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무당이었던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진다. 갑작스레 나타난 천사는 연제의 엄마가 신의 심부름꾼이었다며, 주제도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있다고 했다. 그것을 바로잡으면 엄마가 깨어날 것이라며 연제에게 재주를 건넸다.

그리고 한겸을 만나며 알게 된 진실. 연제는 엄마의 실수가 한겸을 살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겸이 죽어야 하고, 한겸을 살리기 위해서는 엄마가 죽어야 한다.

ー네 눈에는 내가 어떤 인간처럼 보인다는 거야? 너는 나를 어떻게 평가한다는 거야?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그것뿐이었다. 생각해 본 적 없어,라는 선택지는 인정하기 힘들었다. 너는 여기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라는 선택지도 마찬가지였다.

연제는 자신을 정의해 주지 않는 타인이 두렵다.

ー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저히 혼자서는 존재하는 법을 모르겠어.

연제는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겸과 엄마,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ー생각해 보면 엄마의 행동을 ‘실수’라고 칭한 것은 천사뿐이다. ‘실수’는 신이 사용한 표현이다. 나는 엄마가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정의할지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

연제는 천사가 정의 내린 엄마의 ‘실수’를 생각해 본다. 과연 엄마에게, 엄마의 행동은 엄마에게 ‘실수’라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연제가 엄마를 들여다본 순간,

비로소

ー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받았을 때, 소설 속 제목의 ‘너’가 누구일지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너’를 알고 있다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미워했던 마음만큼은 확실한 여름.

미움의 끝에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연제의 내밀어진 손을, 우리가 어떻게 잡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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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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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밀레종 이야기를 알고 있다.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하고 우는 종. ー소리 안 나는 종을 끓여 녹이고는 청동이 불꽃처럼 넘실대는 통에 아이를 밀어 넣었지. 나는 심청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우리는 의문을 가진다. 한국 설화 속에서 희생된 이는 왜 여성들인 걸까.

희생당한 여자들.

소설은 한국 설화 속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인 엘사와 가족, 그의 주변 인물을 통해 가족과의 갈등과 이민자의 삶 또한 함께 그려내고 있다. 디아스포라 소설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특히 작가 앤절라 미영 허는 실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자고 나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동양인이 느끼는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과 같은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ー한 친구는 자기 가족에서 이국적인 반려동물로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죠.“ 이렇듯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 속에 모든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ー“너랑 나,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니까.“

어머니의 광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엘사는 물리학을 선택했다. ー과학은 나의 생존 수단,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으니까. 내가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거짓을 증명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나 남극 기지에서 어릴 적 보았던 빨간 댕기를 맨 유령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면서, 엘사는 어머니와의 과거를 좇기 시작한다.

ー이야기가 엘사에게 돌아올 거예요. 더 강한 울림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올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

메아리처럼 울린 이야기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물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닿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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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부부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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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식은 딸에게 전화한다.

“넌 도대체 언제 결혼하려고 그러냐? 네 나이가 몇이야?”

경식은 결혼하지 않는 딸이 이해되지 않는다. 경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정도는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경식은 ‘꼰대’다.
젊은이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꼰대.

경식은 70년 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연한 것들인데,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ー세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변화하고 흘러가는 무엇이라는 건 알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와 흐름에 군말 없이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일찌감치 눈치챘다.

싫은 소리를 하는 건 경식만이 아니다.

ー일흔이 넘으면 ‘1+1’이라고 쓰인 문구 같은 건 보지 못하기 일쑤고, 정확히 천천히 설명해 주지 않으면 말의 의미를 즉각 파악하지 못한다고 설명해 주는 대신, 알바생이 경직을 바라보는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귀찮은 늙은이의 모습으로 되물은 것이다.

이 소설은 사회의 문제를 등장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은퇴한 경식, 연예인을 좋아하는 그의 아내 화정, 화목한 윗집 부부 봄과 가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해는 우리를 향한 위로로 돌아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잘 단편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는 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마는 사람인 것이다.

“-검정색은 기껏해야 회색의 삶 정도에나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노란색이나 분홍색의 삶은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거야.-“

저마다의 노란색과 분홍색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결국 우리 모두 이해받고 싶은 삶을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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