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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에밀레종 이야기를 알고 있다.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하고 우는 종. ー소리 안 나는 종을 끓여 녹이고는 청동이 불꽃처럼 넘실대는 통에 아이를 밀어 넣었지. 나는 심청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우리는 의문을 가진다. 한국 설화 속에서 희생된 이는 왜 여성들인 걸까.
희생당한 여자들.
소설은 한국 설화 속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인 엘사와 가족, 그의 주변 인물을 통해 가족과의 갈등과 이민자의 삶 또한 함께 그려내고 있다. 디아스포라 소설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특히 작가 앤절라 미영 허는 실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자고 나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동양인이 느끼는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과 같은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ー한 친구는 자기 가족에서 이국적인 반려동물로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죠.“ 이렇듯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 속에 모든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ー“너랑 나,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니까.“
어머니의 광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엘사는 물리학을 선택했다. ー과학은 나의 생존 수단,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으니까. 내가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거짓을 증명하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나 남극 기지에서 어릴 적 보았던 빨간 댕기를 맨 유령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면서, 엘사는 어머니와의 과거를 좇기 시작한다.
ー이야기가 엘사에게 돌아올 거예요. 더 강한 울림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올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닿는다.
메아리처럼 울린 이야기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물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닿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