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이긴 한국인
장훈 지음, 성일만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을 이긴 한국인 (장훈)

 

 

4살 때였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의 어느 추운날 우리들은 산이나 들에서 고구마를 캐서 구워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던 그 때, 갑자기 트럭 한 대가 후진해왔다. 나는 트럭에 떠밀려 시뻘건 불더미 속에 오른손을 디밀고 말았다. 그 사고로 오른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붙어버렸고, 엄지와 인지가 굽어버렸다. 

 

그 장애의 손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23년간 3,085개의 안타를 때렸다. 게다가 그 사고로 태어날 땐 오른손잡이였지만 왼손잡이 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박찬호, 선동렬, 이승엽 ...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수준높은 프로야구 리그에서 젊음을 불사른 우리 선수들이 꽤 많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장훈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지 절실히 느껴진다. 

 

장애를 가진 손으로 정상인들과 겨뤄 최고의 타자가 됐다는 것 이외에도 조센징으로 설움을 당하면서도 끝내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진다. 장훈과 어깨를 나란히했던 홈런왕 왕정치가 중국계였지만 일본에 귀화한 것과는 엄연히 대비된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홀로 배트를 들고 300번씩 정교한 스윙을 갈고 닦았던 연습벌레 장훈. 반드시 야구선수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도 일평생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쟁취한 장훈의 삶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 만하다. 

 

한국 프로야구의 산증인 백인천 감독도 장훈 선배가 있었기에 험난한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19년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책은 1993년 장훈 선수가 일본에서 펴낸 '투혼의 배트'를 발췌, 번역해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책 말미에는 피땀으로 일궈낸 장훈의 3천 안타와 압축 배트를 이용해 만들어낸 왕정치의 홈런 신기록의 비화도 나온다. 


야구가 일본에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단결심을 해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다. 특히 아사히 신문은 사설까지 실어 야구라는 운동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이러한 거부 반응에 맞선 야구 찬양론자들의 이론적인 근거는 희생번트였다. 자신을 희생해 주자를 진루시킴으로써 전체(팀)을 위한다는 것이다. 

 

일본 야구가 물론 힘에서 미국 야구에 뒤지지만 유난히 번트를 자주 활용하는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 본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