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트 1
형민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땀냄새 나는 작화, 땀냄새 나는 스토리. 이것은 결코 더럽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스포츠물을 가르키는 것도 아니다. 이는 필자가 '장인정신'을 다르게 일컸는 말이다.

  때는 서부 정복시대, 하느님을 따르는 신부 '이반 아이작'(본작에서는 하나님이라 하지만 신부란 직책에 맞춰 하느님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그 누구도 해결 못 할 것이라 여겨왔던 문서들을 해독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매우 명석한 두뇌를 가진 학자이다.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회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신부는 결혼을 못 하기에 이 역시 어긋나는 설정 같다.)의 목숨을 손에 쥐고 영원한 구원을 안겨줄 일종의 신 '테모자레'의 봉인을 풀려고 한다. 이반은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봉인을 푼다. 그 순간 뿜어져 나오는 피. 수석 사제들은 그것을 보고 '신의 양수'라며 받들지만 사실 그것은 파멸의 피였을 뿐이었다. 모두의 몸은 터져나갔고, 이반 아이작 역시 죽음의 기로에 선다.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이반의 앞에 과거 학자이자 사제였던 타락한 존재, 악마 '베시엘'이 나타나 계약을 한다. '너의 영혼을 나에게 팔면 너의명을 이어주고 함께 테모자레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그 악마의 약속에, 이반은 영혼을 팔고 죽지 못한 광전사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 테모자레의 부활에 이어 세상은 죽은 시체들이 다시 깨어나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이반은 그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테모자레의 열두 사제와 싸우며 그에게 다가간다. 그 속에서 보여지는 끝없는 피, 불신, 파괴 등의 모습들은 가히 일본의 베르세르크와 같은 '다크 판타지'라는 느낌을 주어, 국내 만화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이런 수준 높고, 남다른 만화이지만 약간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만화의 주제 및 실험성이다. 너무나 종교적이되, 일부 종교를 폄하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있을 수 있기에 비난 여론이 꽤나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만화의 내용 전개를 위한 장치일뿐,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너무 하드보일드 하기에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독자에게는 역함을 보일 수도 있을거라 판단된다.(생략이 적절히 되어있어 그리 징그럽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종교적 지식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작가의 종교는 모르겠으나, 신부라는 직책에 맞지 않는 행동과 언어가 보이곤 한다. 기독교는 신교와 구교로 나누어진다. 본 만화에 등장하는 기독교는 구교로 신에 대한 호칭은 야훼, 하느님이 맞다. 허나 작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오류를 보여준다. 또한 구교의 신부는 연애 및 혼인을 할 수 없음에도 여기선 로맨스가 나타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조금씩 보인다. 뭐, 이반의 타락을 예고하기 위해 로맨스를 그렸다면 엄청난 장치라고 볼 수 있겠다.
  작화는 인체묘사에서 상하로 길고 강조와 생략이 강한 거친 느낌의 작화로, 대다수 독자들에게 익숙치 않은 서구풍의 그림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화면 한 컷 한 컷이 비주얼 노블과 같이, 영화의 스틸컷 같은 느낌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동세를 나타내는 보조 효과선 등이 극히 제한된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서양 만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생소하게 느껴지겠만, 그 완성도와 멋스러움은 마음 속에서 부터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리스트는 그 내용도 그림도 우리나라에서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굉장히 남다르고 생소한 방식이다. 하지만 마냥 생소한 것은 아니다. 하나씩 나오는 중간보스를 상대하며 점차 최종 보스에게 다다른다는 개념은 이소룡의 영화 '사망유희'에 영향을 받은 일본 만화적이어서 기존에 만화를 보던 이라면 금새 친숙해 질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런 스타일에 적응되며 보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과 한 사건으로 인해 퍼져나간 무서움 등을 볼 수 있어 다음 진행이 궁금해지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무조건 묵직한 내용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과거를 회상하며 로맨스가 나오기도 하고, 주인공의 무거운 역을 조금은 완화시켜줄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에서 자연스러운 개그를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점은 국내 만화의 뜬금없는 개그와 대조가 되어 만화의 완성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전혀 색다른 작화에, 전혀 색다른 내용으로 다가온 만화 프리스트, 현재는 휴재 상태인지라 구매하고 있던 독자들에게 너무나 큰 타격을 주었지만, 그 마약과 같은 묘미에 빠져들어 다시 시작하길 기대하며 기다리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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