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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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즐거운 기억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게 꿈이란 걸 자면서 느끼게 되었다. 꿈에서 '이게 꿈이구나'라고 인지하니 곧 깨게 되었다. 동도 트기 전이고 즐거운 꿈이었기에 다시 그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시 꾸고 싶다고 그 꿈속으로 이어서 들어간 적은 없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그게 꿈이고, 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진입하는 방법도 알 수 없을 만큼 꿈이란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그런 꿈을 주제로 하루키가 돌아왔다. 한 번 발표한 소설을 40년 만에 다시 수정해서 761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을 냈다. 하루키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17세 소년과 16세 소녀가 에세이 시상식에서 만난다. 각자의 삶에서 섬처럼 부유하며 살아가던 그 둘이 서로 통하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게 되었고, 견고한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풋풋한 학생으로서의 연애도 짧고 아쉬울 텐데 그들은 만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불확실한 벽에 둘러싸인 도시를 조금 더 내밀하게 건설하는 것에 집중한다. 주인공의 시선에서는 사실 그 도시가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알 수 없도록 몽환적이다. 그저 한창 왕성한 소년이 청순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믿었던 것 아닐까. 주인공조차도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몇 살에 완성되는 것일까?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사랑의 완성이 되는 것일까? 

갑자기 사라진 소녀를 잊지 못한 주인공은 몇 번의 연애를 더 해보지만 계속 실패한 채 다시 섬처럼 떠돌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사랑이 정말 견고했기에 소녀를 그리던 그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소녀와의 기억이 있던 과거와 도시를 헤매는 현재의 내가 혼재하던 1부를 지나 고야쓰씨를 만나는 2부부터 소설은 속도감이 붙기 시작하며 재밌어진다. 시골마을의 도서관장으로 보내는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걸 보면 내가 정말 부러워하고 있고, 시골에 가서 살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미칠 정도였다. 도서관과 1부의 벽에 둘러싸인 도시가 맞닿아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털이 쭈뼛 서는 소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작가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소설을 계속 AS 하면서 끝까지 이야기를 마치고자 마무리하고자 노력한 하루키 작가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들어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다. 모호하면서도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 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긴 호흡의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4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꿈에서 딱 한 번 뵈었다. 먼발치에서 얼굴만 뵈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소녀를 만난 소년처럼 나 역시 아빠를 만나고 싶다. 아빠가 날 못 알아볼 수도 있지만,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한번 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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