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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4년 2월
평점 :
표지와 수록된 단편들의 개성 있는 제목을 보고 기대가 되었던 구픽의 새 앤솔로지 신작은 노동자들의 이야기! ‘프롤레타리아 장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어느 노동자의 모험>이라는 제목처럼 현실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려낸 단편 모음집이다. 도시와 시골을 아우르며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노동운동가, 엄마와 딸, 경찰과 시민 등 평범하고 다양한 삶이 등장한다. 현실과 매우 가깝기에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올 때도 많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냉철하게 그려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채 쓰여졌기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는 단편집이었다. 수록된 작품들마다 장르가 다양하고 개성이 달라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단편 1.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란 걸. 그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있는 어느 곳이건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파업은 생겨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보여준 단편! 모두들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감히 나서지는 못할 때, 한 사람만 있으면 바꾸어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된다는 메세지를 주었다.
단편 2. <카스테라>
달콤한 빵 뒤에 감춰진 제과제빵사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그린 단편. 현실의 어느 프랜차이즈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1인칭 시점의 단편으로 ‘나’의 감정에 공감하기 쉽게 서술되었고, 그 덕분에 ‘나’가 겪는 고난 중에서도 희망을 암시하는 마무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위안이 되었고, 이들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편 3. <노조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내는 악녀로 빙의함>
매우 독특한 제목답게 실제 단편 내용도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미소를 유발한 단편이었다! 로판에 익숙한 독자라면 더욱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 물론 나이 어린 공장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이 단편 역시 무거운 현실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시대와 배경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로 빠르게 읽히는 단편이었다.
“대체 네가 못할 게 뭐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대체 못할 게 뭐가 있어?”
단편4. <슈퍼로봇 특별수당>
의료민영화와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소재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제일 무서웠던 단편. 앞선 3편의 단편이 노조를 결성하고 운동을 시작하려는 내용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은 그에 더해 노동 투쟁의 힘들고 폭력적인 과정도 그렸다. 그리고 긴 싸움의 시작도.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투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려 줘요. 뭐든지 할게요”
단편5. <살처분>
시골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 있는 단편. ‘그땐 그냥 그런 시절이었어’라고 쉬이 넘길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시절’을 살고 있으니 노동 문제를 계속해서 주목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은 단편이었다. 변화가 너무 느린 것 같은 현실에 답답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이들이 더 나아질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동력이 될 것을 암시하듯이, ‘옛날에는 그랬대’라고 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수록된 모든 작품들의 주인공에 공감이 잘 되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망을 이제 실제 노동자들의 여러 투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가는 게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