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아빠와 사람을 위한 동물원 나들이

동물원 ㅣ 그림책은 내 친구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8월

6세부터 초등저학년까지 권하는 그림책.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촌철살인의 유머 감각과 사랑해야하는 가족간의 갈등과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잘 드러낸다. 동물원도 마찬가지. 표지에서도 보여지듯 한 덩치하는 아빠, 개구진 표정의 아이들, 약간 우울한 듯한 표정의 엄마는 아빠에 비해 무척 왜소하다. 아주 단란해보인다고 할 순 없지만 불행한 가족 그림도 아니다. 그저 현실에서 자주 보는 가족 풍경이다. 한 공간안에  살아야 하니 귀찮거나 거추장스럽거나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

가족 나들이에 빠지지 않는 것, 형제끼리 싸우고 아빠는 아무도 웃지 않는 썰렁한 유머를 계속 날리며 혼자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다. 정말 아빠가 창피한 나......, 이런 와중에도 나들이는 계속 된다. 책을 펼치면 왼쪽은 동물원 나들이, 오른쪽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코끼리가 나오는 첫 장면, 무언가 서늘하고 불편한 느낌이 확 다가온다. 무얼까..... 기린, 호랑이... 동물들이 나올수록 그 느낌은 강해진다. 동물들이 푸른 초원이 아니라 사방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엄마의 씁쓸한 이야기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웃기고도 슬픈 이 그림책은 한 장면 장면마다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작가가 심어놓은 유머 코드들과 다른 그림책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저 풍경처럼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동물이거나 발이 도마뱀이기도 하다. 세심한 작가가 박아놓은 코드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돼지책의 주인공 아저씨가 어느 장면에 등장하는지 찾는 것도 큰 재미를 준다. 우리나라에 온 앤서니 브라운이 좋은 그림책의 기준에 대한 질문에 ‘글과 그림이 각각 독립적으로도 이야기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하였다. 동물원은 한번 보고 덮기에 아까운 책이다. 아마 그림책을 열 때마다 아까 보지 못한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의미를 다시 발견할 것이다. 앞 장면 글에서 아이들이 초콜릿 얘기를 하면 뒷 장면 그림에서 ‘초콜릿’봉지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듯 글과 그림은 잘 연계되어 있고 그림과 글은 따로 보아도 완전한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싸우고 꾸중 듣고 여러 동물들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교통지옥을 헤쳐 집에 돌아 온 나는 그 날 밤 이상한 꿈을 꾼다. 자유롭지 못한 동물들을 상징하듯 마지막 장면은 쓸쓸하고 슬프다. 가족들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어느 날, 어딘가에 구속된 듯 느껴지는 날, 특히 아빠가 남부끄럽다고 느껴지는 날, 그림책을 펼치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그 아이가 있어 위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 그림책은 가족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