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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 ㅣ 중앙창작동화 15
원유순 글, 원유미 그림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이를 부, 명예,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흔히 그들이 가진 직함, 부 , 인간관계 등을 고려하여 겹겹의 의미와 이름을 부여한다. 인종, 지역, 학력, 지적 능력, 직업 등 사회적으로 주어진 의미는 무수히 많다. 리엔은 ‘자신이 여자 블랑카’임을 인정한다. 함께 사는 가족인 리엔에 대해 새엄마 이외의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하나는 반친구들의 웃음과 놀림,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에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오거나 결혼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에 하나는 생각한다. ‘동남아 사람들은 맞아도 되나? 그 사람들을 때리는 건 죄가 안될지도 몰라.; ’하나‘의 심리적 혼란은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파급효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막연히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들의 고통과 삶에 대해 나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지은이는 길지 않는 이야기와 전형적인 등장 인물을 통해 우리 안의 근거없고 얄팍한 인종적 우월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회적 약자-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이룬 외국인-를 무시한다는 것은 그들과 가정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무시와도 연결된다. 성숙한 사회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을 키워내면서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잘못된 현상에 당당히 의견을 제시하는 하나, 리엔, 그리고 하나의 학교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가치 지킴이로 소중한 인물이다. 하나의 주장은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임과 동시에 부와 직함에 가려진 인간이란 존재를 드러나게 한다. 존재 그 자체로 한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와 리엔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현실과 맛선다.
내 권리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권리 또한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하나와 리엔은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하나씩 배워가는 사람들이며 가치지킴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나의 거짓말로 야기되는 아빠의 폭력이 다소 가볍게 그려지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폭력은 어쩌다 생긴 사건이 아니라 폭력을 쓴 사람이 가진 습관일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는 각종 폭력사태에 대해 단순히 뺨 한대가 아닌 하나 아빠의 폭력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이 책장을 덮은 지금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