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진 아이 사계절 중학년문고 9
김옥 지음, 김윤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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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생긴 생채기나 흉터는 커가며 희미해져 곧 잊혀지거나 추억이 되어 가끔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렇지 못한 상처나 흉터는 가슴의 멍이 된다. 김옥은 불을 가진 아이, 동배를 통해 얼굴의 멍자국이 불길로 이어지는 한 소년의 일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필요하면 훔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앙갚음하고 아침부터 꾸중 듣는 일이 다반사인 문제아.‘......(중략)이것 저것 많이도 먹은 하루인데 이상하게 속이 텅 빈 것 같아 무엇이든 집어넣고 싶’은 동배는 무엇이건 필요할 때 ‘빌려 쓰는’ 아이다.   이른 아침 반쪽이 산에 올라 불장난을 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으스대지만 소년의 일상은 평화롭지 않다.   칠단에서 막히는 구구단처럼 어른에게 억울하게 혼날 때도 있고 엄마에게 이유 있는 매를 맞거나 아빠에게 이유 없는 매를 맞는다. 얼굴에 멍이 든 날 싸움꾼으로 오해하는 선생님께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복도로 ‘꺼져버리’는 신세가 된다. 학교는 아이에게 왜 멍이 생겼는지 묻지 않고 벌을 주면서 멍은 모락모락 가슴의 불길이 된다. 동배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빠나 학교는 아이에게 너무나 폭력적이다. 언 발을 녹이도록 따뜻한 분홍 실내화를 건네 준 세령이에게 보여준 호의조차 거부당하자 불길은 점점 거세진다.

김옥은 세상의 많은 동배들이 삶의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배는 부모님의 보살핌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중학생들에게 훔친 돈을 뺏긴 날 ‘고슴도치가 되고 싶’도록 분노는 쌓이고 막혀버린 감정의 출구는 갈 곳을 잃는다. 이런 동배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사랑하는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지만 엄마의 매와 눈물도 그 순간이 지나면 의미를 잃는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좋은 냄새가 나는 아이가 되고 싶’지만 벌어진 사건에 대한 동배의 대처법은 말썽으로 되돌아 올 뿐이다. 누군가에게 혼나고 매를 맞고 돈을 빼앗겨도 늘 엄마를 기다리던 동배는 어느 날 도망치듯 집을 나간다. 그것은 불안과 외로움, 결핍의 불길에서 도망가는 동배의 선택이었지만 잘못된 선택과 풀길 없는 분노, 꼬이는 일상이 불러일으키는 가슴의 불길은 빈집을 태우는 화재로 이어진다.

책은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 읽은 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답답한 동배의 삶에 동참하도록 한다.

문학작품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면 어떤 판단도,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은 결말은  ’너 그런 아이지!‘라는 단정보다 ’너 왜 그랬니‘라며 아이에게 말 거는 순간이다. 다 큰 어른인 채 하던 아이는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며 방황하는 10대 소년의 성장통은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결과를 가져온다.

책은 문제아의 개과천선이라는 전형성을 벗어났기에 아이들과 얘기 나누는 훌륭한 읽기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초등 4학년인 동배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부모님에 대해, 친구와 이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덮은 후 궁금하다. 세상의 동배들은‘입시’중심인 이 땅에서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중학생 동배, 고등학생 동배, 사회인이 된 동배, 우리 사회 동배들이 자라고 성장하며 어른이 되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 한때 불장난으로 존재를 드러냈던 아이가 어떻게 불을 다스려 어른이 되었나를 들려주는 좌충우돌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불을 가진 아이에게 안전수칙을 알려주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으며 해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몫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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