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면서기입니다 - 16년 차 동네 공무원의 이제야 알 것도 같은 이야기
이우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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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차 동네 공무원의 이제야 알 것도 같은 이야기



"공무원이시죠?" 들을 때마다 흠칫하게 된다. 대체 나의 어디가 공무원스러운 걸까.... p.180 네, 면서기입니다


공무원스럽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나 역시 얼굴에 쓰여있기라도 한 듯 종종 "선생님이시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목소리만 들어도 "선생님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면 신기하면서도 알지 모를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도대체 학교 문을 뒤로한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내 말과 태도에 그런 모습이 배어있다는 것일까...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무능, 비리, 탁상행정 같은 화를 돋는 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公  사는 사람으로서 도의적 무게를 늘 자각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공무원이란 직업은 내게 여전히 어렵다..... p.180 네, 면서기입니다


막상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면서기로서의 모습이나 생활보다는 개인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한 사람의 이우주씨를 만나게 된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면서 생기는 (실제 공무원은 몇 년마다 직장을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타성에 젖은 모습보다는 오히려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면서 얻어진 깨달음과 성찰 등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지만 묻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다수에게 익숙해져 있는 문제들이 특히 그렇다. 그럴수록 이런 질문들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 "내가 택한 이 방향이 맞을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답하다 보면 대치 중인 '나'와 '문제' 모두를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다..... p.45 그런데 말입니다


나 역시 한때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고, 신입 교사가 되었을 때 설렘으로 교실에 섰으며, 아이들과 사랑에 빠져 학교 가는 날만 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고인 물과 같은 조직의 행태와 식상함에 서서히 지쳐갔고 내 손으로 사표를 던지고 뒤돌아서서 학교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수없이 했던 고민의 무게는 깊고도 무거웠지만 재 볼 방법은 없다.


그런데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우울증, 공황장애, 광장 공포증, 사회불안증 같은, 이름만 다를 뿐 내내 한 덩어리로 비정상적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더는 어려웠다. 한 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데에도 하루가 걸렸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게 고통스러워 바닥만 보고 걸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변형되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온몸의 혈관이 일순간 빨려 나가는 듯한 기괴한 경험이 자꾸만 찾아왔다. 무서웠다.... p.76 그런데 말입니다


..... 정년까지 22년. 어쩔 수 없다. 비뚤어진 권력에 지랄맞은 공무원으로 사는 것, 이것이 사람에 대한 나의 예의다. .... p.90 그런데 말입니다


이우주씨 역시 숨고 싶었을 것이다. 잠시라도 숨을 돌릴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히 견디어 냈고 그런 순간들을 다른 곳에 눈을 돌림으로써 무사히 넘겨냈다. 16년을 공직에서 머물면서 차근차근 6급 공무원이 되었고 다양한 경력을 쌓으면서 내공이 생겼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에는 여유가 생겼고 일 처리하는 능력치는 계속 상승하였다. 바꿀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여전히 갈등하고 불만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꿈을 꾼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는 이십 년간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 이수은이 합정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불현듯 깨달음을 얻어 집필한 책이다.

예상 불가 대응 불가인 삶의 순간 - 가슴속에 울분이 차오를 때, 사표 쓰기 전에, 통장 잔고가 바닥났을 때, 이 길이 아닌 것 같을 때, 남 욕하고 싶을 때, 안 망하는 연애를 하고 싶을 때, 싸우러 가기 전에, 가출을 계획 중일 때...-마다 시급히 필요한 책들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 p.114 이를테면 말이죠


소신 있게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들.

꿈을 향해 달려갔고 그 꿈을 움켜쥔 사람들.

그러나 막상 손을 펴보니 생각과 다른 꿈의 모습에 실망하고 충격받은 사람들.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무심코 가다가 보니 낯선 나를 만난 사람들.

어느새 직업병에 걸려 내가 모르던, 상상치 못한 나의 모습에 경악하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괴롭고 힘든 사람들.

이들 모두가 이우주씨이자 면서기이다.


코로나19로 집도 직장도 비상이다.... 면사무소를 찾는 사람들은 화가 나 있었다. 마스크가 없어서, 일자리를 잃어서, 여당이 미워서, 장터가 서지 않아서 소리를 질렀다. 무엇 하나 해결해 줄 수 없는 면서기들의 대답은 궁색할 수밖에 없었고 철밥통을 끌어안은 공무원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의 눈빛에 상처받았지만 오죽 어려우면 면사무소에 와 소리를 지를까 생각했다.... p.166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다행이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상황에 지지 않는다.

나름의 해법을 찾고 단단히 딛고 일어선다.

그 모습을 보는 내가 흐뭇하다.

나도, 신발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등산화를 꺼내 신고, 콧노래를 부르며 동네 뒷동산을 올라보아야겠다.

당신도 걸어보면 어떨까. 등산화까지는 필요 없다.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어깨를 펴고, 딱딱해진 얼굴 근육의 힘도 빼고, 기왕이면 어어폰은 두고 가시기를. 나뭇잎도 소리를 내고 2022년의 새들도 여전히 노래한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p.159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뤼치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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