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와 호리병
고수아 지음 / 미문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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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헤르만 헤세


효녀, 착한 아이, 장녀, 엄마, 며느리. 이름표를 붙이면 인간은 그 이름표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때로는 그 이름표를 떼어내 잠시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내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호리병에 갇힌 오리는 저자의 모습이었다. 『오리와 호리병』의 저자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를 떠올리게 한다. 목사인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며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지 못한 채 불안에 떨었던 사춘기의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호리병에 조금씩 균열을 내며 스스로를 발견했듯이, 작가는 '착한 아이'라는 틀을 뺀치를 들어 깨부셔 간다. 그리고 고유한 빛으로 자신의 궤도를 지키는 별처럼,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동생들이 잠들어있는 새벽. 연탄불을 갈아야 했던 작가의 모습에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라 책을 덮고 흘리는 눈물을 닦아낸다.


'참는 아이, 여간해서 말대꾸하지 않는 아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아이. 그 여자에게 인내는 칭찬받는 감정이었고, 화는 숨겨야 할 결함이었습니다.' p. 175


무엇이 그토록 두렵고 불안했던 걸까?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었던 어린 시절. 내게 붙어있던 이름표를 떼어내면 난 쓸모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 속의 76년생 작가와 77년생인 내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버린 작가는 해방의 도구인 뺀치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에 박혀있던 못을 빼내기 시작한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동료,

내 꿈을 비웃던 선배,

나를 배신하거나 무시하던 사람들.

나의 문장들은 '복수'라는 욕망에서 태어났습니다.

 p.156


'진정한 복수는 상처 입은 내가 그 상처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더 이상 그들의 평가가 내 삶을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무언가 힘을 얻는 듯했다. 한편으로 복수라는 감정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 스스로에게 못을 하나씩 박으면서 상처를 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 속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인생은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시간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고통을 마주하는 건 힘겨운 시간 일수 있지만, 인생의 부피를 늘려 고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작가가 써 내려간 책의 마지막에 <어떤 문장>이라는 시가 적혀있다.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 잠시 머물러

하루쯤 숨을 쉬었으면 합니다.'


숨 쉴 수 없이 힘겨웠던 삶에 작가가 작은 구멍을 내어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듯하다. 어릴 적 중년이라는 나이가 되면, 많은 것을 깨닫고 '진정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이제 그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나를 찾아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그 쉬어감에 이 책이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자신이 되려고 애쓴 적은 없습니다.

다만 나를 지우는 일을 그만두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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