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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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변은 패널티 안줍니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모술수 권민우가 이렇게 따질 때마다 정명석 변호사가 짓는 표정을 기억하나요?
‘하…얘가 또 왜 이러나…멀쩡한 것같은 애가 왜 또 이러나..이걸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나…’ 하는 그 표정 말이다.
그게 내가 20년의 교사 생활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던 최근 몇년간 가장 많이 짓던 표정이었다.

나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스무해가 넘도록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갈짓자 행보를 교육의 최전선에서 살아냈다.
수기로 작성하던 생활기록부가 NEIS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에 적응했고, 이명박 정권의 특성화고등학교 지원 정책의 수혜자였고, 수시와 학생부종합전형의 초기에 말도 안되는 전설로 회자되는 입시 결과도 지도해봤고, 그 학종이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뒤틀리고 왜곡되어가는 지를 생생히 목격했으며, 28년 전 학력고사에 비해 새로운 사고력 측정 시험으로 찬사받았던 수능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연명하게 된 꼴을 보았고, 그 와중에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교실 붕괴를 막아보려고 미친 년처럼 화도 내보고, 개그맨처럼 도라에몽 개인기도 펼쳐보고, 얼리어답터처럼 더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따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학교가 교사가 학부모가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져 가는 지를 보았고 가장 마지막에 보았던 것이 ‘권모술수 권민우’였다.
부모의 경제적 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전환되고, 시험을 통과한 소수가 사회의 모든것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사회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고통과 고난을 감내하는 노력과 인내심이라는 미덕을 가진 권민우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권민우가 어떻게 아수라 백작처럼 한 몸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성실하고 똑똑한 권민우가 왜 초조한 2등 자리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 권민우가 되는지를 보았다.

이 책은 우리사회와 교육을 횡적, 종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분석하여, 그 모든 시작과 끝에는 ‘공정’의 탈을 쓴 ‘시험능력주의’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물질로 측정되어 줄세우는 우리 사회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장 한 장 읽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 영혼과 육신을 갈아넣은 지난 20년의 교육자로서의 삶의 결과가 사회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권모술수 권민우’나 , 무력진압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소송으로 협박하여 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대우조선해양사태나,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청소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장도 듣기 싫어하는 엘리트 학생을 키우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줬다. 교육이 인간을 바꾸고, 인간이 사회를 바꾸는데, 내가 이 거지같은 2022년의 오늘에 일조 한 것 같아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밥알이 곤두선다.

그럼에도 힘들게 힘들게 한 장 한 장 읽어간 이유는 이 글의 끝에 해답이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글의 마지막에 저자는 제도개혁, 구조개혁, 가치개혁의 3차원의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읽고나도 답답하다. 알고 있다. 교육은 답이 없다. 교육은 사회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으므로 사회를 바꿔야 교육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는데, 이 사슬을 끊어내는 방법은 칼을 들어 잘라내는 것 뿐인 것 같아 절망하고 있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와 권민우의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 변호사가 또 패널티 소리를 꺼내는 권민우에게 돌아서서 일갈한다.
“ 권민우 변호사 패널티 되게 좋아하네?!!! 같이 일하다가 의견이 안맞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얘기해서 풀고 해결을 해야죠! 난 그렇게 일 안합니다.”
정명석의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로운 세상의 가치관에 내가 뒤처지는 소리를 하는 걸까봐 눈치보던 정신이 번쩍 든다. 새로운 세상이건 뭐건, 옳은 건 옳은 거고 틀린건 틀린 거다. 각 분야의 시니어들이 저렇게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단호하게 말할 때, 우리 사회의 시험능력주의는 변화될 것이다.
‘그동안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 힘들게 힘들게 한 발 한 발 온 몸의 힘을 끌어 모아 바꿔 나가야 한다. 세상이 빙빙 돌아도 언젠가는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의지로 낙관하며, 좌절과 분노, 절망감을 넘어서서 내 자리에서 옳고 그름에 대해 일갈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도 사람도 세상도 변한다.

* 이 서평은 창비의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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