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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은 처음 접한다.
그는 이 책을 크리스마스이브, 잠든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써내려갔다고 한다.
과연 그는 어떠한 마음으로 써내려갔을까를 궁금해하며 책을 펼친다.
편집자의 안내에는
이 책을 최대한 천천히 읽으라고 쓰여 있었다.
최대한 천천히- 그렇지만 100쪽짜리 책이니만큼(글씨도 본문의 반 정도만 있는 아주 시원한! 편집 디자인) 두어시간 내외로 읽게 된다.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100페이지를 능가한다.
이 책엔 손에 꼽힐 정도의 적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심플한 구조속에 선과 위대함을 담았다.
그리곤 우리에게 질문하며 되묻는다.
당신이 아쉬워하는건 시간이 아니냐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 내 기분은 마치 크리스마스에 따뜻하게 지펴지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 있는 기분이었다.
따뜻하고 훈훈하며 온기가 느껴져서 마음과 몸이 온전히 따뜻해지는 느낌.
그 느낌은 이 책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아마도
디자이너와 편집자가와 번역가가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각자의 100프로를
끌어내어 만든 책이다.
잘 읽히고 잘 보인다.
참 잘 만든 책인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하지만 본인 인생의 끝의 시점을 아는 사람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가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것을 찾아가며
남은 삶을 써내려갔듯이.
가장 중요한 것을
그것을 일상의 삶에서 깨닫고 찾아간다면
삶은 얼마나 충만하며 좋을까?
아니 나는 난 얼마나 좋을까.
두고두고 읽을 책이다.
매년 추운 겨울이면 생각날 생강차 같은 책이다.
출간일 2019년 11월 01일
108쪽 | 288g | 127*184*15mm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 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 p.35~36
나는 네게 우리가 실은 조그맣고 아늑한 동굴 깊숙한 데서 고 있다고,
하늘은 동굴 구멍을 덮는 바위 같은 거라고 말했다.
“그럼 별은 뭐예요?” 네가 묻기에 틈새라고,
거길 통해 빛이 조금씩 스며들어 오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네 눈도 내게는 그 틈새 같다고 했지.
빛이 조금씩 스며 나오는 작고 작은 틈새라고.
너는 그 말을 듣고 깔깔 웃었다. 그 이후로 그렇게 웃은 적이 있니?
- p.38
내가 너를 취직시켜 줄 수 있었지만, 수백 군데에 취직시켜 줄 수 있었지만,
너는 4세대 전에 증기선 터미널로 쓰였을 때부터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그 건물에 있는 술집 비뉠바렌의
바텐더로 일하고 싶어 했다. 나는 행복하냐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충분히요, 아빠. 충분히요.”
- p.59
나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너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는데.
너는 다정한 아이로 자랐으니.
- p.64
“네가 죽는 걸로는 부족해. 그 여자아이의 온 생애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려면 다른 생명이 존재를 멈추어야 하거든.
그 생명 안의 내용을 삭제해야 해. 그러니까 네가 네 목숨을 내주면 네 존재는 사라질 거야. 너는 죽는 게 아니라 애당초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아.
너는 여기 없었던 사람이니까.”
- p.85~86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지.
그럴 때 우리 사이엔 늘 정적이 흐르잖니. 너는 바 카운터를 닦고 유리잔을 정리했고 나는 사랑이 담긴 네 손길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는 좋아하는 걸 만질 때면 항상 거기서 심장이 뛰고 있는 듯이 다루잖니.
- p.95
너는 웃으며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빠."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너는 문을 지나 주방으로들어갔다. 나는 차마 너를 다시 부를 수가 없었다. 1초는항상 1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한 가지가 그 1초의가치다. 모두가 항상 줄기차게 협상을 한다. 날마다 인생을 걸고 거래를 한다. 이게 내 거래 조건이었다.
- p.99
“겁이 나네요.” 나는 실토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겁이 나는 게 아니야. 그냥 아쉽고 슬픈 거지.
너희 인간들에게 슬픔이 공포처럼 느껴진다는 걸 가르쳐주는 이가 없으니.”
-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