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양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1984'의 세계는 끝내 절망적이었나?

코로나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역학조사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큐알 코드 인증과 같은 제도가 도입되었고 씨씨티비 설치 확대와 같은 논의가 계속되어 왔는데, 그때마다 뉴스기사에서 제기되었던 의혹이 한 개 있었다. '빅 브라더가 출현하는 사회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가 바로 그것인데, 빅 브라더가 조지 오웰의 유명 소설 1984에서 등장한 단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잘 몰랐던 내가 이번 기회에 1984를 읽게 되면서 위 문장을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한마디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다룬 소설로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오세아니아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당'의 전체주의 독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 1984 속의 오세아니아는 크게 당을 위해 일하는 내부당원(고위층)과 외부당원(하층, 내부당원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당의 우민화 정책에 성공하여 무지한 채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프롤 총 3가지 계층으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는데, '빅 브라더'라는 당의 상징이 사람들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느 곳을 가나 빅 브라더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으며, '빅 브라더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라는 문구 아래 사람들, 정확히는 외부당원들은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텔레스크린에 의해 자신이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심지어는 어떤 잠꼬대를 하는지까지 24시간 내내 모든 것을 간섭받게 된다. (프롤들은 너무나도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여 아예 감시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은 계속해서 과거의 기록을 조작해나가며 사람들의 정신과 생각을 '이중사고'라는 체제하에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작하고 지배해나가는데, 당을 위해 일하는 외부당원이었던 주인공 윈스턴은 이러한 당의 지배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며 당에 대한 의문을 간직한 채 점점 당에 반하는 일탈들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2. 모순을 받아들이다, '이중사고'

1948년에 쓰인 이 소설이 현대에 와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이 1984 세계관 속 당의 지배 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4 속 오세아니아 대륙을 지배하는 전체주의 기관 '당'은 기본적으로 '모순을 받아들임'을 지배원리로써 사용하고 있다.
당은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라는 3대 강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 슬로건부터가 모순적임을 우리는 눈치챌 수 있다. 어떻게 전쟁이 평화고, 자유가 예속이고, 무지가 곧 힘이겠는가? 이러한 모순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품게 만들지만, 당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저 받아들임으로써 당에 순응하도록 하는, 이른바 모순을 받아들이는 '이중사고'를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지배를 이어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세아니아 대륙은 이제껏 동아시아와 싸우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당이 '야 사실 우리는 유라시아와 싸우고 있었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 우리 이제까지 동아시아와 싸우고 있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품는 대신 '아~ 그렇구나. 우린 이제까지 동아시아가 아니라 유라시아와 싸우고 있었구나'라며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중사고이다. 모순됨을 자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러한 방식으로 당은 과거를 조작하지만, 사람들은 그 조작까지 다 받아들이며 당에 100%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1984를 이제 막 처음으로 읽으시는 분들은 이 '모순'에 집중하여 책을 읽어나가시길 바란다.

 

 

3. 왜 이 번역판을 읽어야 하는가?

조지 오웰의 1984는 워낙 유명한 소설인 만큼 정말 많은 번역판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움출판사의 이 1984 번역 버전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역자가 1984의 결말에 대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문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1984 세계관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신어'를 쉬우면서도 올바른 단어로 번역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고, 특히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신어의 원리' 보유를 시제에 유의해 완벽하게 번역하며 1984의 진정한 결말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신어의 원리 부분을 그냥 부록이라 생각해 읽지 말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안 읽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이 책의 진정한 진가는 바로 이 신어의 원리 부분에 있다.
책을 끝까지 읽고 이렇게 소름이 돋았던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어의 원리 부분까지 빠트리지 않고 완벽하게 번역해주신 역자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4. 마무리하며..

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약간의 소름이 느껴졌던 부분은, 조지 오웰이 적어나간 1984 속 세계관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보이면서도 이것이 알게 모르게 현대사회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이 그들의 신문과 방송, 책을 조작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언론 조작과 유사하다. 정부는 알게 모르게 언론 조작을 권유하고 있으며, 언론 조작은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도입된 큐알 코드 인증 정책은 우리의 행적을 정확하게 추적하고 있으며, 최근에 구글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용자에게 맞춤화된 광고를 띄어주는 것은 아니냐는 의혹은 흡사 소설 속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던 것과도 같다.

 

무서운 점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84 속 가장 최하층 계급으로 여겨지던 프롤은 스스로 사고하고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우매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절대 반항이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께름칙하다.

 

따라서 조지 오웰의 1984는 현대사회가 언젠간 빅 브라더가 지배하고 있던 1984 속 그 사회처럼 변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준다. 그 시대에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예견해 소설로 써나간 조지 오웰의 통찰력에 감탄스럽다.
우리는 과연, 현실이 1984 속 세계처럼 변하더라도 주인공 윈스턴과 같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을까?
그리고 단지 이상함을 눈치채는 것을 넘어 거기에 당당히 반항하고 싸워나갈 수 있을까?
1984는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본 서평은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제공받은 독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