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토끼였을 때
세라 윈먼 지음, 정서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누구나 상상해봤을 것이다. 인형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우리 강아지가 어느 날 나에게만 말을 걸 것이라고. 어린 엘리에게도 말을 하는 토끼가 있었다. 그 토끼의 이름은 이었다. 그 시절,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다정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엘리는 평화로운 유년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롭다는 것이 꼭 행복하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유년시절에서도 나름의 굴곡은 있고, 그런 굴곡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끊임없이 그때로, 신이 토끼였을 때로 계속 엘리를 부른다.

 

엘리와 엘리의 오빠 조, 그리고 엘리의 친구 제니와 조의 친구인 찰리. 이 네 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1부가 흘러간다. 1부는 말 그대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엘리는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소녀였다. 선물 받은 토끼에게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은 똥도 사랑을 하냐며 다소 신성모독적인 발언도 툭툭 내뱉는다.

 

토끼가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토끼가 신이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지.”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유년시절에 엘리네 가족에게는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진다. 엄마가 암선고를 받기도 하고, 엘리는 친하게 지냈던 옆집 할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그리고 조는 친구인 찰리를 사랑하게 되고, 아빠는 또 복권에 당첨되어 큰 돈을 벌기도 한다. 엘리의 친구인 제니는 갑자기 떠나버린다. 이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엘리와 조를 먹여서 키우고, 그들은 어느새 성인이 된다. 1부가 어린 시절을 다룬 이야기였다면 2부는 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다. 남다른 우애를 자랑했던 엘리와 조는 이제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911 테러가 발생했고, 뉴욕에 살던 조는 행방불명이 된다.

 

인생은 우리에게 행운도 주지만 불행도 안겨준다. 늘 웃음만 가득했던 것 같은 유년시절도 잠시 생각해보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노력 때문에 잠시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1부는 어린시절의 얘기라서 그랬는지 아이들만의 상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몸에서 동전을 꺼내는 아이,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거는 토끼. 사건들도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고 몇 가지 정황을 제시하면서 이런 일이었겠구나, 하며 생각하게끔 한다. 어린아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린아이는 키가 자라고 몸이 커져서 성인이 된다.

 

오래도록 잊힌 채 머물러 있는 건 없어, 엘리. 때로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걸,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걸 세상에 일깨워줘야 해,”

 

사람은 듣는 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 사람마다 갖고 있는 사연이 있고, 지나온 인생이 있어서 한 권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엘리도, 조도, 찰리도, 제니도 모두 한 권의 책이다. 무던한 인생을 보내왔을 것 같던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년시절부터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소박한 꿈들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던 그 시절, 내 영혼의 목격자이자 내 유년 시절의 그림자였던 그에 대해. 사탕이 1페니밖에 안 하고 신이 토끼였을 때였다.

 

이 작품은 거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아무도 모르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랑, 동생의 모든 것을 품어주고 숨겨주는 오빠의 사랑, 동성끼리의 사랑, 그리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와 나누는 우정,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사랑.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누가 봐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불행들도 사랑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내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경계 없는 사랑 덕분에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전할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정감어린 농담은 재미있고 편안했으며, 장난은 친밀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그것이 요란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 그들만의 사랑해였던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렸을 때 누구나 상상해봤을 것이다. 인형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우리 강아지가 어느 날 나에게만 말을 걸 것이라고. 어린 엘리에게도 말을 하는 토끼가 있었다. 그 토끼의 이름은 이었다. 그 시절, 다섯 살 터울의 오빠와 다정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엘리는 평화로운 유년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롭다는 것이 꼭 행복하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유년시절에서도 나름의 굴곡은 있고, 그런 굴곡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끊임없이 그때로, 신이 토끼였을 때로 계속 엘리를 부른다.  


엘리와 엘리의 오빠 조, 그리고 엘리의 친구 제니와 조의 친구인 찰리. 이 네 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1부가 흘러간다. 1부는 말 그대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엘리는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소녀였다. 선물 받은 토끼에게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은 똥도 사랑을 하냐며 다소 신성모독적인 발언도 툭툭 내뱉는다.

 

토끼가 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토끼가 신이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지.”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유년시절에 엘리네 가족에게는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진다. 엄마가 암선고를 받기도 하고, 엘리는 친하게 지냈던 옆집 할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그리고 조는 친구인 찰리를 사랑하게 되고, 아빠는 또 복권에 당첨되어 큰 돈을 벌기도 한다. 엘리의 친구인 제니는 갑자기 떠나버린다. 이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엘리와 조를 먹여서 키우고, 그들은 어느새 성인이 된다. 1부가 어린 시절을 다룬 이야기였다면 2부는 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다. 남다른 우애를 자랑했던 엘리와 조는 이제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911 테러가 발생했고, 뉴욕에 살던 조는 행방불명이 된다.

인생은 우리에게 행운도 주지만 불행도 안겨준다. 늘 웃음만 가득했던 것 같은 유년시절도 잠시 생각해보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노력 때문에 잠시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1부는 어린시절의 얘기라서 그랬는지 아이들만의 상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몸에서 동전을 꺼내는 아이,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거는 토끼. 사건들도 정확하게 서술되지 않고 몇 가지 정황을 제시하면서 이런 일이었겠구나, 하며 생각하게끔 한다. 어린아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러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린아이는 키가 자라고 몸이 커져서 성인이 된다.

 

오래도록 잊힌 채 머물러 있는 건 없어, 엘리. 때로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걸,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걸 세상에 일깨워줘야 해,”

  사람은 듣는 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 사람마다 갖고 있는 사연이 있고, 지나온 인생이 있어서 한 권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엘리도, 조도, 찰리도, 제니도 모두 한 권의 책이다. 무던한 인생을 보내왔을 것 같던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년시절부터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소박한 꿈들이 누구에게나 이루어지던 그 시절, 내 영혼의 목격자이자 내 유년 시절의 그림자였던 그에 대해. 사탕이 1페니밖에 안 하고 신이 토끼였을 때였다.

이 작품은 거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아무도 모르는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랑, 동생의 모든 것을 품어주고 숨겨주는 오빠의 사랑, 동성끼리의 사랑, 그리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와 나누는 우정,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사랑.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누가 봐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불행들도 사랑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내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경계 없는 사랑 덕분에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전할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정감어린 농담은 재미있고 편안했으며, 장난은 친밀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그것이 요란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 그들만의 사랑해였던 셈이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제리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오랑. 갑자기 쥐 시체가 발견된다. 건물 구석에 죽어 있는 쥐들. 처음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쥐 한마리가 죽은 것쯤이야.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죽어가는 쥐는 더 많아진다. 사람들은 아직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도 점점 희생되고, 결국 진단을 내리게 된다. 이건 '페스트'라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오랑은 폐쇠된다. 들어온 사람들은 나갈 수 없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를 탈출하려고 애를 쓰지만 삼엄한 경비에 가로막혀버린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에 사람들은 갇혀버렸고 이들의 삶은 잠시 정체되어버린다.


오랑에서의 삶은 멈추었다. 죽음만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나갔다. 도시에서는 종교마저 변질되어버려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메시지만 전달된다.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진 이 상황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분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현 상황에 순응해버린다.

 

우리 시민들은 순종했고, 흔히 말하듯 적응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불행한 사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태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더이상 애석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의사 리외는 바로 그것이 불행이며,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의사 리외는 객관적으로 이 페스트 사태를 서술한다. 처음에 시민들은 리외를 찾는다. 이 병을 고치고 자신들을 낫게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약도 없는 페스트에 리외는 죽음의 신이 되어버렸다. 리외가 환자를 보고 페스트라는 진단을 내리면 그 즉시 환자는 격리되어 다른 환자들과 같이 죽음을 기다리다가 결국 같이 매장된다. 범죄자였던 코타르는 페스트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더 활개를 친다. 평상시 같았더라면 이 세상에 자기만 격리되어 있었을 터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기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격리된 것이다. 페스트가 세질수록 코타르도 점점 기세등등해진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 맞서싸우려고 한다. 이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기자 그랑도 결국 앞장서서 페스트와 싸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평범한 삶에서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삶의 형태를 살게 된다.

 

 

 

페스트는 결국 서서히 그 기세가 꺾이더니 사라지고, 사람들은 해방된다. 그리고 페스트는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 작품도 막을 내렸다.


페스트는 무엇일까.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삶에 저항하는 것을 큰 가치로 삼았다. 카뮈의 이런 철학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페스트는 바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우린 이런 삶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페스트』는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아주 객관적으로 서술하며 독자들에게 이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부조리함과 타협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부조리함과 맞서 싸울 것인가. 카뮈는 이런 어려움에도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그랑'이라는 인물을 영웅으로 묘사하며, 페스트와 맞서 싸우기 위해 끝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굴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결론은 어김없이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로 귀결되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싸워야 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에는 메르스라는 역병이 돌았다.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와는 그 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 공포는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메르스라는 병이 돌 때에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었다. 오랑처럼 폐쇠가 되지는 않았지만 입국과 출국이 힘들어졌고, 아무도 찾고 싶어하지 않았다. 때문에 경제는 어려워졌고 나라의 분위기도 뒤숭숭해졌다. 메르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페스트로 인구의 4분의 1을 잃었던 옛날 유럽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메르스가 한반도를 공포에 덜덜 떨게 했을때, 메르스 전용 병동에서,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간호사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의료인이면서도 미리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따스하게 돌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N95 마스크를 눌러쓰고

손이 부르트도록 씻으며

가운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고 나서야

남은 중환자들을 돌봅니다.


마스크에 눌린 얼굴 피부는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비닐로 된 가운 속으로는 땀이 흐릅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느냐고.

순간, 나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들이 지나갑니다.


가겠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서 있는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 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

      

                      _동탄성심병원 (메르스 첫 사망자가 있던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의 편지 중



알베르 카뮈의 작품 속, 보건대가 그랬듯, 의료인들이 그랬듯이 이들은 정말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싸웠다. 국가 차원의 재앙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도리를 다 했던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싶다. 메르스라는 큰 질병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현재는 견딜 수 없고, 과거는 혐오스럽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처지여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정의감이나 증오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자들과 비슷했다. 그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상상 속에서 기차를 다시 달리게 하고 울리지 않는 초인종을 연거푸 누름으로써 시간을 메우는 길뿐이었다.


"아!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고 나면 더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일상을 뒤흔든 거대한 이야기. 그리고 평온했던 삶을 지키고 싶은 영웅들의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약, 일제의 탄압에서 간신히 벗어난 한국에서

어린 소녀가 일본 군인과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면,

우린 그 소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베티 그린의 『독일 병사와 함께한 여름』 속 설정, 유대인 소녀와 독일군의 우정이라는 주제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 상상해보았다. 1973년, 이 작품이 출간될 당시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을지,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대인인 소녀 패티 버건은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낸다. 백화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아빠는 난폭한 성향이라 패티에게 툭하면 손찌검을 했다. 패티가 조금이라도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바로 허리띠를 풀러 휘둘러댔다. 허영심이 많은 엄마는 예쁘장하고 애교 많은 둘째 샤론만 예뻐한다. 패티는 엄마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반,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반이다. 인정받고 싶어서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지만 결국 엄마아빠에게 돌아오는 건 무관심한 눈빛이다. 그런 패티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건 흑인 유모 루스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외톨이였던 패티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마을에 와 있는 독일 포로들이 모자를 사러 패티네 백화점에 오게 된다. 우연히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포로 안톤과 이야기하게 된 패티는 독일군이 생각보다 선하고 똑똑하다는 점에 놀란다. 독일군은 악마 같이 생겼다고 들었지만 오히려 잘생긴데다가, 엄마아빠보다 패티의 말을 더 잘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패티는 자기만의 아지트에 틀어박혀 사전을 보며 단어들을 갖고 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감옥에서 탈출한 안톤을 본다. 그리고 안톤을 자신의 아지트에 숨겨준다. 유대인 소녀와 독일 병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청소년 소설의 고전인 이 작품은 출간되고 난 뒤, 금서로까지 지정된 작품이다. 유대인으로 설정된 패티 부모의 성향이 당시 사회 통념상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선한 유대인, 악한 독일인, 이렇게 흑백논리가 펼쳐져 있는 상태였는데 이 작품에는 오히려 유대인이 악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청소년 소설답지 않은 비극적 결말이 이 작품을 금지하게까지 만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읽히는 이유에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나 자신을 찾기라는 주제 때문일 것이다. 패티는 자신의 존재조차 무시당하는 아이다. 때문에 자기가 예쁘지 않다고, 나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안톤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패티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자기가 나쁘지 않다는 것, 우리 가족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패티는 가난한 집 아이와 친구를 하고 흑인 유모를 엄마보다 더 따른다. 이미 편견을 많이 극복한 아이인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편견은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악한 사람일 거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안톤을 받아들인 결과 패티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청소년 문학의 고전을 우리나라 아이들이 읽는다면,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통 방황을 하던 청소년이 가족의 따스한 품으로 돌아온다는 결론이 우리 사회에서 통하는 줄거리인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정반대의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옳다, 우리 가족이 틀렸다.

안톤의 은신처였던 곳에서 나는 나뭇잎 하나가

단단한 떡갈나무에서 가족관계를 끊고 떨어져나와

잔잔한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나뭇잎처럼 되고 싶다.


용감하고 똑똑한 소녀 패티 덕분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호두 겉껍질 같은 단단한 편견을 극복하고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피비. 그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니셜로 불린 내 이름은 이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아빠와 나라에 대한 충성을 내 자유의지로 저버린 지금, 나는 스스로가 선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시 흘러가는 것이야말로 구명보트가 할 일이 아닐까. 난파당한 사람들을 육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 육지가 보이는 곳까지 인도해주는 것. 마지막 남은 몇 미터를 홀로 헤엄쳐가는 건 그들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