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제리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오랑. 갑자기 쥐 시체가 발견된다. 건물 구석에 죽어 있는 쥐들. 처음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쥐 한마리가 죽은 것쯤이야.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죽어가는 쥐는 더 많아진다. 사람들은 아직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도 점점 희생되고, 결국 진단을 내리게 된다. 이건 '페스트'라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오랑은 폐쇠된다. 들어온 사람들은 나갈 수 없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를 탈출하려고 애를 쓰지만 삼엄한 경비에 가로막혀버린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에 사람들은 갇혀버렸고 이들의 삶은 잠시 정체되어버린다.
오랑에서의 삶은 멈추었다. 죽음만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나갔다. 도시에서는 종교마저 변질되어버려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메시지만 전달된다.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진 이 상황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분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현 상황에 순응해버린다.
| 우리 시민들은 순종했고, 흔히 말하듯 적응했는데,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불행한 사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태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더이상 애석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의사 리외는 바로 그것이 불행이며,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의사 리외는 객관적으로 이 페스트 사태를 서술한다. 처음에 시민들은 리외를 찾는다. 이 병을 고치고 자신들을 낫게 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약도 없는 페스트에 리외는 죽음의 신이 되어버렸다. 리외가 환자를 보고 페스트라는 진단을 내리면 그 즉시 환자는 격리되어 다른 환자들과 같이 죽음을 기다리다가 결국 같이 매장된다. 범죄자였던 코타르는 페스트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더 활개를 친다. 평상시 같았더라면 이 세상에 자기만 격리되어 있었을 터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기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격리된 것이다. 페스트가 세질수록 코타르도 점점 기세등등해진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 맞서싸우려고 한다. 이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기자 그랑도 결국 앞장서서 페스트와 싸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평범한 삶에서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삶의 형태를 살게 된다.

페스트는 결국 서서히 그 기세가 꺾이더니 사라지고, 사람들은 해방된다. 그리고 페스트는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 작품도 막을 내렸다.
페스트는 무엇일까.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삶에 저항하는 것을 큰 가치로 삼았다. 카뮈의 이런 철학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페스트는 바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우린 이런 삶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페스트』는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아주 객관적으로 서술하며 독자들에게 이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부조리함과 타협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부조리함과 맞서 싸울 것인가. 카뮈는 이런 어려움에도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그랑'이라는 인물을 영웅으로 묘사하며, 페스트와 맞서 싸우기 위해 끝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굴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결론은 어김없이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로 귀결되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싸워야 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
2015년, 대한민국에는 메르스라는 역병이 돌았다.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와는 그 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 공포는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메르스라는 병이 돌 때에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었다. 오랑처럼 폐쇠가 되지는 않았지만 입국과 출국이 힘들어졌고, 아무도 찾고 싶어하지 않았다. 때문에 경제는 어려워졌고 나라의 분위기도 뒤숭숭해졌다. 메르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페스트로 인구의 4분의 1을 잃었던 옛날 유럽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메르스가 한반도를 공포에 덜덜 떨게 했을때, 메르스 전용 병동에서,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간호사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이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의료인이면서도 미리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따스하게 돌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N95 마스크를 눌러쓰고
손이 부르트도록 씻으며
가운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고 나서야
남은 중환자들을 돌봅니다.
마스크에 눌린 얼굴 피부는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비닐로 된 가운 속으로는 땀이 흐릅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느냐고.
순간, 나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들이 지나갑니다.
가겠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서 있는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 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
_동탄성심병원 (메르스 첫 사망자가 있던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의 편지 중
알베르 카뮈의 작품 속, 보건대가 그랬듯, 의료인들이 그랬듯이 이들은 정말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싸웠다. 국가 차원의 재앙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도리를 다 했던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싶다. 메르스라는 큰 질병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현재는 견딜 수 없고, 과거는 혐오스럽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처지여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정의감이나 증오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자들과 비슷했다. 그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상상 속에서 기차를 다시 달리게 하고 울리지 않는 초인종을 연거푸 누름으로써 시간을 메우는 길뿐이었다.
"아!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고 나면 더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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