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타이타닉>의 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1년 만에 다시 만나
영화를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궁금했었는데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데스 감독이라는 소식을 듣고 개봉하면 꼭 봐야할 영화로 진작부터 점찍어 놓고 기다렸다.
1월 케이트 윈슬렛이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원작소설이 궁금해졌다. 1961년 리처드 예이츠라는
낯선 작가가 발표한 소설. 타임 선정 100대 영문소설로 꼽히고 이 작품으로 작가들의 작가라는 명성까지 얻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외면당한 소설이라고 한다.
제목도 레볼루셔너리 로드 곧 혁명의 길이다. 뭔가 굉장히 강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마침내 손에 넣은 책은 영화의 주인공을 띠지로 두른 예쁜 분홍색이었다. 띠지를 벗겼을 때 드러나는 50년대와 잘 어울리는 파란색 자동차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두꺼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읽은 옮긴이의 말은 역시 심오한 내용을 담을 소설이라고 알려주었다. 1950년대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교외주택으로 이동이 시작되고 컴퓨터가 도입된 시기라고 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이었던 꿈과 이상은 이러한 물질숭배의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러 스러져간다. 이런 미국 사회의 모습을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에이프릴과 프랭크를 통해 그리고 있는 <레볼루셔너리 로드>
작품의 시작은 에이프릴이 동네사람들과 함께 준비한 연극을 공연하는 데서 시작한다.
연극은 실패로 막을 내리고 뉴욕 연극학교를 나온 에이프릴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
더구나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위로하기는 커녕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사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아내의 마음을 풀어줄 수많은 말을 생각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최악이었을 뿐이다.
"글쎄,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안 그래?"
이 말을 한 프랭크는 바로 후회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그 말로 인해 에이프릴은 상처를 입은 것을. 이 장면 뿐만 아니라 소설은 전체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한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만화를 읽어주겠다고 나섰다가 금세 아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회사 여직원과의 불륜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상을 위해 떠날 계획에 설레다가 상사의 인정과 승진 제의에 현실에 머물고 싶어지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심리가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50년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도 놀랍지만 2009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를 정확하게 뽑아낸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는 감동을 뛰어넘어
마치 내 솔직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프랭크와
이상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현실이 슬픈 에이프릴은 그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을 냉정하게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후반으로 가면서 그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조금의 미화도 없는 현실이었기에.
그리고 가능하면 현실보다는 이상 가까이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에이프릴을 연기하는 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를 연기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나이들고 살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소설을 읽고나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이든 모습이 프랭크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대감을 가지고 개봉하자 마자 극장을 찾았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화면 속에서 어떻게 그려질 지 너무 궁금했다.
영화는 빛나는 원작과 셈세한 연기 그리고 뛰어난 연출이 만난 작품이었다.
시작은 좀 빨랐다. 소설의 앞부분을 많이 축약해놓았던 것이다. 영화가 줄여놓은 부분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영화의 빈 공간을 메꾸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용이 진행되면서 원작소설에서 감동을 느끼고 공감했던 부분을 쫙쫙 뽑은 대사에 감동했다. 소설에서 섬세하게 묘사되었던 인물들의 심리는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로 메워졌다. 두 사람의 섬세한 표정을 보며 여기서는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래서 이러이러한 거야라고 알고 보니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그 의미가 보였다. 원작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50년대 시대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는 음악이다. 영화는 주인공 특히 프랭크의 감정의 변화를 50년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정말 텍스트에서는 줄수없는 감각의 만족이었다.
원작은 영화에서 미쳐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을 채우고 영화는 텍스트가 보여주고 들려주지 못하는 시각과 청각을 채운 정말 오랜만에 원작과 영화 함께여서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