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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멀리 아케이드에 있는 시계탑이 여섯 시를 알린 뒤 침묵을 지킨다. 젊은이는 책상머리에 축 늘어진다. 오늘도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새벽에 사무실로 나왔다.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바지는 너무 헐렁하다. 손에는 구겨진 원고 스무 장이 쥐여 있다. 시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이론으로, 독일 물리학회지에 오늘 우송할 참이다.”
이 ‘소설’의 첫머리다. 여기의 ‘젊은이’는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막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룬 논문을 완성하고 새벽에 사무실, 그러니까 베른의 특허청 사무실에 출근한 참이다. 1905년. 1666년 뉴턴의 ‘기적의 해’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의 해’.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에 대한 논문,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 그리고,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한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소설은 바로 그 ‘시간’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다루고 있다. 꿈이라고 가장하고 있지만, 그래서 꿈이니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실제 그러하리라는 것을 실감할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과학적 근거, 즉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근거한 시간에 대한 꿈, 내지는 깊은 사유를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은 ‘과학적 언어’로 점절된, ‘과학적’ 소설의 외피에는 많이 탈피해 있다.오히려 시적 언어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미래가 없거나, 과거가 없거나, 서로 다른 시간 감각을 지니는 등등 시간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상상하고, 그랬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떠할지, 우리의 생각이 어떠할지를 진지하게 시적 언어, 짧은 소설적 구성을 통해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의 작가가 《과학이 세상을 바꾼 순간》(또는 《과학의 천재들》)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란 점이다.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싶지만 진짜다. 앨런 라이트먼, 그는 물리학자다. 그래서 물리학에 관한 책도 쓰지만, 이렇게 소설도 쓴다. 이렇게 상상력 가득한 소설 말이다.
소설은 이렇게 맺는다.
“아인슈타인은 원고를, 시간에 대한 그의 이론을 비서에게 준다. 여덟 시 6분이다. 그는 자기 책상으로 다가가서 서류 더미를 흘끔 보고는 책장으로 걸어가서 공책을 한 권 꺼낸다. ... (중략) ... 아인슈타인은 책상으로 돌아와 한동안 앉아 있다가 다시 창가로 돌아간다. 그는 텅 빈 느낌이다. 특허를 살펴본다거나, 베소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물리학 생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는 텅 빈 느낌이고 그래서 작디작은 까만 점과 알프스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가 그려낸 세상이 시간은 그 시각부터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