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문명사 - 만리장성에서 미국-멕시코 국경까지, 장벽으로 본 권력의 이동과 세계 질서
데이비드 프라이 지음, 김지혜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 <블랙팬서>에서 와칸다제국의 왕위 계승권을 둔 싸움에서 두 왕자는 각각 과 다리를 상징했다결국 다리가 승리했고그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였다. “벽을 쌓을 것인가다리를 놓을 것인가?”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았던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그 메시지에 공감한 것은 나만은 아니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프라이의 장벽의 문명사를 보면 과 다리에 대해 역사적으로’ 달리 생각하도록 한다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의 비교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장벽은 평화를, ‘다리(교량)’은 전쟁을 의미했다는 것이다트럼프의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으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라.”(<블랙팬서>의 메시지와 동일하다)라는 표어가 등장했지만그 이전에 오랫동안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라는 속담이 있었고트럼프 이전의 많은 대통령들(부시와 같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클린턴오바마 같은 민주당의 대통령도)이 장벽 설치를 시도하고실행하고반대하지 않았다.

 

장벽은 대대로 문명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문명 바깥쪽이른바 이편에서 보기에 야만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막기 위한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조치였다그러한 방편은 전 인류사를 관통하고 있고전 지역을 망라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그래서 중국의 만리장성에 대해서중국이 어떻다 등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그 만리장성이 상징성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지중국이 특수하게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므로 상당히 부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장벽들은 늘 파괴되었다벽 바깥(‘페일 너머’)의 민족들은 벽 안쪽의 문명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이 있었으며거칠었고거침이 없었다반면 (벽 바깥쪽의 이들이 보기에벽 안쪽의 남자들은 여성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싸움의 끝은 거의 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므로 문명은 다시 피와 벽돌로’ 벽을 쌓았고야만으로부터의 보호를 꾀했고어느 정도 유지하다(“장벽이 없었다면 중국의 학자도바빌로니아의 수학자도그리스의 철학자도 없었을 것이다.”), 또 파괴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베를린 장벽은 오히려 너무 짧게 유지되었기에 유명해졌다지금도 최소 70개의 (물리적인장벽이 접경 지역을 가르고 있다고 한다그 장벽을 쌓은 국가는 장벽으로 이민의 흐름을 막았다는 자평을 하고 있으며고도의 기술을 쓴 이스라엘의 장벽을 본받기 위해서 각국에서 시찰하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역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장벽이 무너지는 것은 역사적 법칙과 같은 것이다우리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장벽을 쌓고 있지만그 장벽은 언제나처럼 무너질 것이다계속 쌓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지금은 장벽이 평화를교량이 평화를 상징하는 시대는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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