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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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수현 작가의 《유리 젠가》를 읽었다. 책을 읽기전 이미 인스타를 통해 작가님의 역량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은 총 네가지 이야기로 펼쳐진다.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이다.


📖 볼일을 보고 나오는 길에 송장 같은내 모습을 거울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단돈 십만 원에 산목숨도 죽은 사람이 될 수 있다. 23


📖 체구가 아담한 사이즈라 화면에 담기 좋은 시체의 몸집이라고 했다. 31


📖 마치 슟이 들어갈 때, 내 혼과 생명력도 함께 담겨서 자꾸만 소멸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체 연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계속해서 침잠해갔다. 가만히 드러누워만 있는데 왜 힘이 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죽은 사람의 삶은, 산 사람의 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44/ 시체놀이


 📖 내 삶인데도 나름의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돈 앞에서 나는 자꾸 작아지고 있었고, 꿈을 쫒는 삶이 아닌, 되는대로 살아지는 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색을 칠하고 다시 씻으면서도 다른 일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 찬물로 마무리를 하니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 취준생이 되어 면접을 보러다니며 마음졸이는 시간을 보내다 편의점 알바를 하고, 방송국 알바를 한 주인공. 그녀는 맡은 배역이 '시체'역할이다. 개인적으로 젤 인상깊었던 단편 소설이었다. 


시체 역할을 통해 죽음의 색에 대해 깊게 통찰하며 견뎌야 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편의점 알바를 하며 만난 고양이🐈‍⬛의 죽음을 우연하게 맞딱들이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갸릉갸릉 우는 어떤 작고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보속의 기회다.❗(52)"라는 부분이 인상깊다. 


📖 싱싱한 배춧속을 맛있게 갉아 먹다가도, 어느 정도 먹었다고 생각하면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과하게 욕심을 부리지도, 투정 부리리도, 사랑하는 이에게 등을 돌리지도, 실망을 주지도 않는 🐌 달팽이가 참 예뻐 보였다. 115


📖 돌아선 달콩이의 뒷모습에서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꼭 그러했다. 나 역시 그와 함께 처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무자비하게 물어뜯고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었으니까. 나의 말과 행동에 생채기가 난 그는 자꾸만 자꾸만 깨져 버린 패각속으로 몸을 숨겼다. 134


📖 어둠의 적요를 가르는 소중한 존재, 바로 그들이 우리 삶에 찾아왔다. 손안에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들. 🐌 🐌  143


++ 방과후교사로 일하던 지애는 남편과 원룸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지애도, 여행플래너 업무를 하던 남편도 비슷하게 실직을 한다. 어느 날 해남의 친정에서 김치를 담구다가 배춧잎속에서 달팽이를 발견하고 집에와서 키우며 달팽이카페 '내달소'에서 정보도 얻고 달팽이의 쾌적한 삶을 위해 보금자도 마련해주고 (푹신한 바닥재, 인테리어를 위한 수초, 먹이그릇까지 곁들여) 정성을 들여 키운다.


🎀 우리 집 1호 꼬맹이가 마침 한달  전부터 아는 누나로부터 🐌 를 분양받아왔다. 처음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과일 상자에 상추 몇장을 물에 적셔넣어주고 다음날엔 흙이 필요하단 것을 알고 죽은 화분의 흙을 깔아주었다. 두 아이 모두 작고 꼬물거리는 귀여운 달팽이를 예뻐했고 어느 날 가족여행을 가는 바람에 사박 오일을 비우게 됐다. 미쳐 누구에게도 맡기지 못하고 갔는데 여행 4일째날 근처 사는 친정아빠께 부탁드려 팽이가 살아있는지 살펴달라고 했다. 그 아이는 마른 흙속에서도 잘 살아있었고 지금도 이따금 넣어주는 상추잎을 먹으며 잘 살고 있다.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실직으로 한껏 기죽은 남편의 모습을 보며 그렇다고 다독여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서로 냉랭한 공기만 만든채 근근히 살았던 나날들...달팽이를 또 한마리 분양받아 두 마리를 키우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부부관계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들이 공감되어 좋았다.

특히 오늘 하교후 온 1호가 달팽이를 돌보길래 책에서 읽은대로 아는 척을 해줬더니 '우와'하는 모습😲으로 또 만족했다.


📖 전하지 못한 말이 입에 깔깔하게 걸릴 때, 네가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고 싶어. 스스로 지탱할 직함을 짊어지고 달려온 너를,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온기를 얹고 싶어. 신이 빚고 나서 잊어버린 작고 까만 찰흙 인형처럼, 켜켜이 쌓인 유리 젠가처럼 위태로운 세계를 묵묵히 살아내 온 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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