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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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2년 1월 코로나가 시작되어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이 혼란 속에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 중에 다음 달인 3월 경악할 만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바로 디지털성범죄 사건인 일명 'N번방사건'이다. 평소 나는 보도되는 온갖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부정적인 내용들을 접하고 우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뉴스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메일 검색을 하려고 한다던지, 블로그를 하려 할때 우연찮게 중요 이슈들은 접하게 된다. 처음 그 사건을 접했을 때 '버닝썬사건'으로 떠들썩 하고나서 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니 정말 어느 누구도 범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실 내 의지적으로 뉴스를 틀지 않아도 어쩌다 방문하는 부모님댁에서 틀어놓은 Tv를 통해 사건의 내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암울하고 무서운 이야기에 제대로 깊게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범죄도 지능화되고 끔찍한 사건들이 많아지지만 그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언제까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체화할 순 없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관심있는 작가님의 SNS에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라는 책에 대한 간단한 글을 보았고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애정하는 온라인카페 <엄마의 꿈방>의 페이스(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엄마들의 스터디모임)에서 이 책을 가지고 특별 기수를 모집하여 글에 대한 의견나눔을 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아, 이건 해야겠다. 혼자 읽고 경각심만 느끼고 그치는게 아니라 같이 의견을 나누면서 연대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겠다.'란 생각에 바로 신청을 했고 선정이 되었다. 며칠 후 책을 받아봤는데 펼치고 나서 읽으면서 '정말 이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불꽃은 최초 보도자, 최초 신고자입니다. 저희는 2019년 9월 뉴스통신진흥회 '제1회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한 기사는 지난해 7월 한 달간 텔레그램 'AV-SNOOP 고담방'을 중심으로 퍼진 각종

불법촬영물 공유 대화방과 'N번방'을 잠입 취재한 탐사보도의 결과물입니다.

2019년 9월 저희 기사가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며 심각성을 인지했고

2019년 7월 중순, 지방 경찰청에 신고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한겨레신문,

2020년 2월 MBC, 국민일보, SBS등에 제보했습니다.

(...)

불꽃은 '최초 보다, 신고자'라는 타이틀을 지키려고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습니다.

(...)

저희는 디지털 성범죄 '문화' 해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P75


이 책의 저자는 '추적단 불꽃'이다. 책을 보고 이들이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 2인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들이 이런 대단한 일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수상 스펙을 쌓으려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20대 여성인 우리에게 무엇보다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불법 촬영'일 이것을 주제로 잡았다"-<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18

책은 총3부다.

1부에서는 2019년 7월 그날의 기록을

2부에서는 불과 단의 이야기를

3부에서는 함께 타오르다라는 제목으로 2020년도에 성범죄관련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 및 연대, 범죄 근절 차원의 다양한 불꽃의 활동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서 뉴스에서 들은 와치맨','갓갓','박사'등 등 사람들의 별칭을 접했다. 추적단이 디지털 범죄, 특히 미성년자 성착취 및 촬영과 성착취동영상 유포의 온상지인 텔레그램 N번방을 찾아 몰래 오래 잡입하여 그 실상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들 몇 몇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는 활동 과정을 마치 영화의 미스터리 사건을 보는 듯 숨죽여 보게 됐다. 책을 읽고 그 사건의 내용과 거기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보면서 목이 마르고 가슴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 사회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사람을 노예취급하고 온갖 희롱과 폭력을 일삼으면서 어떻게 아무런 죄의식이 없을지, 특히 지인의 사진을 다른 사진과 합성해서 대화방 사람들과 함께 말로써 능욕하고 개인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치가 떨리고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N번방'이었다. 와치맨은 N번방에 있다는 여성의 이름, 학교,반, 평가를 주기적으로 올리며 참여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소위 'N번방 회원'들은 주로 고담방에서 N번방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품평회를 열었다. "OO이 학교 찾아가자"는 식으로 강간을 모의하기도 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20

우리가 잠입해 있던 파생방에서는 주로 나이와 국적을 가리지 않은 아동 성폭행 영상과 화장실이나 여성 자취방 불법촬영물, GHB(일명 물뽕)을 먹여 기절시킨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진과 영상 등이 유포됐다. 영상 유포와 함께 여성을 성희롱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어떤 파생방에서는 성희롱하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강제 퇴장을 시키기도 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21

'여기 공유되는 아이들의 영상과 사진들은 일탈계하는 여자아이들을 협박하여 얻어낸 자료들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도망간 아이들(의 영상)이니 마음대로 (유포)하셔도 됩니다.'-p23

위와 같은 'N번방'의 공지의 일부는 이게 정말 사람이 한 말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을 취재하던 불꽃조차 알고 지내던 지인을 끔찍한 대화방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가해자는 가상공간뿐이니라 현실 공간에도, 우리 주변에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코딩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새벽 3~4시까지 하루 평균 다섯 시간 정보 증거를 수집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서 깨면 곧바로 텔레그램에 접속했다. 대화방 하나당 수천 개의 대화가 쌓여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벽에 일어났을 사건이 걱정돼 한 시간은 텔레그램 대화방을 나가지 못했다.우리가 잠 드는 새벽 시간에 놓치는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경찰에 신고한 뒤 7월 셋째 주 이후로는 밤중에 모니터링을 하다가 절로 눈이 감길 때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러햐ㅏ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34


책의 앞부분에서 N번방의 실체에 마음이 무겁고 어려웠다면 책의 2부, '불과 단'의 이야기에서는 불꽃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소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성차별이나 페미니즘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어 반가웠고 편안했다.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면 곧바로 주위에서 면박을 주던 때다. 지금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은 심하지만 그때는 유치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마치 금줄이라도 넘은 것 같았다. 선 너머에는 우리가 몰랐던 사회의 이면이 있었다. 여성 운동사를 공부하고 소소하게 페미니즘 기념품들로 미닝아웃하면서 똑딱해진 거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금지된 선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직장 성희롱, 경력 단절, 임금 차별, 독박 육아, 펜스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세어봐도 다섯 손가락이 부족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눈앞에 높다란 허들이 놓인 느낌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84

누군가는 왜 그리 힘들게 인생을 사냐고 묻기도 한다. 왜 별것도 아닌 일을 예민하게 받아 들이냐고. 웃기는 말이다. 내가 불편하고 싶어서 불편한가. 여러 사회 문제를 인지하고 불편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쟁취해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 나의 예민함이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157

불과 단의 얘기도 사실 아주 가볍지만도 않다. 자신의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들. '고등학교시절의 선생님의 부적절한 스킨십과 관련한 스쿨미투','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나타난 젠더 권력','아르바이트하면서 겪고 알게 된 오피스 와이프','데이트 폭력의 목격'까지. 그것들을 보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여자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이 다시 상기됐다. 한편, 우리의 예민함이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을 막고 사회문제로 이슈화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점점 많아지는데

사법부는 여전히 가해자의 정신 질환을 들먹이고 그들의 미래를 염려한다. (...)

여성에게는 당장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검찰은 가해자의 영장을 기각하고 재판부는 형량을 낮추고 있다.

사회에서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으니 여성들은 가방에 제 몸을 지키기 위한 도구를 챙기고

여가 시간에 호신술을 배우느라 바쁘다.

(...)

범죄를 예방하는 일은 여성들 각자의 일이 될 수 없다.

여성 혐오범죄의 해결은 국가의 일이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107

이 책에서는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만을 주고자 쓴 책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하는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그 방안을 제시한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1. 더이상 영상물 유포를 묵인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부끄러움의 몫을 전가하는 이가 아닌 가해자 연대에 수치의 책임을 부여하고 가해자 연대를 폭로해나가고 고발하는 것이다.

2.정확한 피해를 알리고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다.

3. 피해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피해 사실 하나로 제단하지 않고 개인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다.

4. 정부차원에서는 여러 제도를 통해 피해자들을 지원해줘야하며 원스톱 지원 체계를 갖추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대리 설명할 수 있는 조력자가 동행하도록 하고 여러 기관에서 실행중인 지원 방식을 일원화해서 피해자 보호에 도움을 준다.

5.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있으니 무엇보다 아동 청소년을 유인하는 모든 행위를 통제한다는 법익을 우선시한다.

6. 현행법상의 죄명, 양형 기준에 문제가 있으므로 법차원에서는 실증적으로 양형 인자들을 발굴해서 '처벌은 어느 정도 수준이면 된다'고 기준을 정한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 지원이 아닌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p267)이라고 한다. 영상 삭제 지원, 수사 지원등은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올해 7월 여성가족부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의 기능을 강화하는 사업에 8억 7500만원을 투입하기를 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불과 단이 끔찍한 사건을 엄청난 노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취재하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끈끈한 유대감때문이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서로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성착취를 놀이, 돈벌이 수단으로 소비하는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혹은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으면 피해자임을 직접 호소하고 입증해야 한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려면 피해자가 나서서 증언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가 얼마나 '발품'을 파느냐에 따라 범죄자의 처벌이 좌우된다. 일상을 모두 희생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해야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대한민국에 없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p234


우리나라 여성은 디지털 성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 남성은 그런 피해 여성이 자신의 지인, 혹은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국민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도록 노력해야한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만연해있는 성희롱, 성차별 문제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신변이 위험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현장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고발하는 추적단 불꽃의 안위가 걱정된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있는 행동이 우리 나라를 살렸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앞으로는 나도 연대의식을 가지고 힘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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