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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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움 마음에 서평단 신청을 하고 「심판」을 받아보았다.

파란색 표지의 '신전'의 그림과 가운데 정의의 여신으로 보이는 '디케'가 왼쪽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심판」은 베르베르가 「인간」에 이어 다시 한번 시도한 희곡으로

천국에 있는 법정을 배경으로 판사,검사,변호사,피고인이 펼치는 설전을 그렸다.

주인공이자 피고인은 폐암 수술 중 사망한 아나톨.

그는 자신이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이자 가장,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검사는 생각지도 못한 죄를 들추어낸다. 프랑스에서만 4만 부 이상 판매된 「심판」은 희곡이면서도

마치 소설처럼 읽히며,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가 빛나는 작품이다.

「심판」 프로필 중

제1막 ㅣ 천국 도착

제2막 ㅣ 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

제3막 ㅣ 다음 생을 위한 준비

책의 구성은 위와 같고,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맨 위에 적어놓은 문장을 보면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피고인 아나톨 피숑

피고인 측 변호사 카롤린

검사 베르트랑

재판장 가브리엘

「남자 외과 의사 핀셋. 하나 더. 그리고 여기 좀 닦아 줘요. 간호사! (꾸르륵거리는 소리) 여기 부글부글하는 거 보이죠. 닦아 달라고 했잖아요. 내 이마도 좀, 땀이 떨어지잖아요. 이거야 원, 일요일에 먹고 남은 카술레도 아니고, 속이 메슥거리네. 됐어요, 그건 내가 할게요.

비프음이 느려진다.

여자 외과 의사 안 된다니까. 될 턱이 없어. 다 망친 거야.

남자 외과 의사 입 좀 다물어, 모니크, 입 좀!

여자 외과 의사 오케이, 하지만 내 말이 맞을 테니 두고 봐. 난 분명히 경고했어, 조르주. 여길 절제부터 해야 한다고 말이야. 이거 사방에서 줄줄 흐르네. 네 <폐암>이 떠나는 모양이야.」-「심판」P14-15

 

아나톨의 수술실 상황이다. 뭔가 잘못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의사들의 대화.

희곡을 책으로 본적은 없는데 장면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면서 대화들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나톨 그런데 당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새로 왔어요?

카롤린 제가 새로 온 게 아니라, 당신이 <새로운> 체계에 온 거예요.

아나톨 여전히 아제미앙 교수의 암 병동인 건 맞죠?

카롤린 일종의 <별관> 같은 것이라고 해두죠. 」 - 「심판」P22

 

 

내용을 알고 보니 아나톨과 카롤린의 대화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내용이 어떻게 전개 될지도 궁금했다.

"마치 환한 빛이 끌어당기는 것 같고, 한 마리 새처럼 공간 속을 날았고 투명한 존재들이 주위에 있었으며 다함께 날다가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는 은하의 중심에 도착했어요. 그 소용돌이는 푸른빛을 띠고 가장자리에는 별 가루가 뿌려져 있고, 모두 산이 하나 솟아 있는 하얀 들판이 나올 때까지 빛을 향해 날아갔어요. 들판에 강줄기가 흐르고, 강가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위의 내용은 카롤린과 아나톨의 대화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인데, 천상의 모습을 표현한 듯 하다. 천상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잘 묘사했다.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심판」P54

카롤린과의 대화 중인 '가브리엘'의 말을 옮겨왔다.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정의가 신선하다.


 

 

사후 세계인 <새로운 세계>에 가면 이런 상황이 정말 생길까?

다음의 장면은 피고인의 법정 모습이다. 화면을 통해 '아나톨'의 진술'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장면이 참 재밌다.

가브리엘 자, 영혼 번호 103-683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육신, 그러니까 1947년 프랑스에서 출생해 2007년 프랑스에서 사망한 아나톨 피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나톨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피숑 씨, 가장 최근에 지상에 다녀온 소회가 어떤가요?

아나톨 제 삶이요? 음........저는 꽤 좋은 사람이었어요.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죠, 그리고 좋은 가장이었어요. 사람들한테 지갑도 잘 열었고요. 일요일마다 미사에 가는 가톨릭 신자였고, 윗사람과 동료에게 인정받는 좋은 직업인이었죠. 」 -「심판」P106-107


 

 

「베르트랑 (단호하게 잘라 말하며)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대로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너는 단 하나의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손가락으로 아나톨을 가리키며)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어떻게 썼죠? 전혀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형......다시 말해 삶의 형을 구형합니다.」 - 「심판」P133

이어서 진행되는 재판과정도 참 흥미진진하다. 변호인인 '카롤린'은 아나톨 피숑을 변호하기 위해 5,281개의 선업에 대해서 말한다.

결국, 그는 '환생'을 하게 되고 다음 아래의 내용은 다른 태아로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있는 강점과 핸디캡이다.

「심판」P188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해석을 조금 옮겨와 본다.

「심판」의 주인공 아나톨은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

「심판」의 재미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역할 설정에도 있다.

피고인 아나톨이 죽기 전 가졌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판사였다.

전생에 부부였던 카롤린과 베르트랑은 이혼의 앙금 탓인지 천상에서도 서로를 원망하면서

역할이 뒤바뀐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재판장 가브리엘.

영혼의 환생 여부를 판단하고 지상의 태아와 짝짓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전문가답지 못한 허술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중략)

지상과는 다른 가치체계와 도덕 규범이 작동하는 천상 법정의 떠들썩한 「심판」을 구경하다 보면

희곡 한 편이 단숨에 읽힌다.

「심판」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은 몰입감 있고 생동감있어서 금방 읽힌다. 특유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과 재치를 보자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잠시동안 나의 죽음후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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