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방향
서신애 지음 / 필름(Feelm)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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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난 날 오후, 회사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이 날은 아이들을 픽업할 일이 없었기에 모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로웠다. 2층의 구석진 공간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책을 펼쳤다. 오래된 건물을 노출 콘크리트로 인터리어했는데 뭔가 책이랑 잘 어울렸다.

「마음의 방향」이라는 책 제목에 끌려 궁금했던 책, 이 책은 여배우 '서신애'의 첫 번째 에세이다. 여배우의 시선으로 따라간 삶의 모습, 내면의 솔직함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참 진솔하고 담백했다. 내가 앉아 바라보는 공간(깔끔하고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한편엔 곰팡이의 흔적도 드러나있는)과 그녀의 글이 참 묘하게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책은 총 3장으로 이루어졌는데

1장_사랑의 방향

2장_바람의 방향

3장_마음의 방향 이다.

단지

「마음의 방향」 35

변해가는 당신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노력하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당신의 슬픈 얼굴을 더는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시작했을 뿐이고, 나는 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내 마음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관계는 없다는 사실만이 전부였다.

 

 

사랑의 순간들

「마음의 방향」 59

끝내 마음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의 순수하고 거짓 없던 사랑이 이따금 생각난다. 결국 사람이, 사랑이 다시금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사랑을 시작한다.

++

사람때문에, 사랑때문에 힘들지만 또 사람때문에 사랑때문에 위로받고 편안함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테다.

이 세상에

「마음의 방향」 86

이 세상에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다 하나쯤은 아픈 사연을 갖고 있겠지. 하다못해 꿈이라도 있겠지. 그 꿈이 어디 거창해야만 하는가. 무언가를 사고 싶고 갖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도 꿈일 텐데.

++

그렇다. 저마다 쓰라린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고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다 저마다 다른 표정과 생각으로 소소한 꿈을 꿈꾸며, 이루며 살아간다. 나또한 작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 갖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는 것 등을 누릴 때 정말 행복하다. 왠지 나 자신을 잘 챙기는 느낌이다.

솔직해지는 방법

「마음의 방향」 112

이 글을 읽고 저자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4점]

학교 국어 시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문제의 지문. 저자는 이런 지문을 볼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작가의 심정을 어떻게 알아?'라고.

위의 지문을 바꿔, 이 글을 보고 느낀 감정 혹은 심정은 어떠한가? 라고 질문해보면,

아마도 대부분 멍해질 거라고 이야기하며 당장 내가 느끼고 바라보고 있는 것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것을 고백한다. 최근의 작품들에서 가면을 쓴 그림들이나 등에 화살을 맞에 아파하면서도 웃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며 타인에 의해 만들어 낸 감정과 행동이 본인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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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배우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은 '서신애'라는 배우가 어린 나이에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내면에 대해 연기하다보면 자신의 감정이 아닌 만들어 낸 감정을 보여준다라고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솔직하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했을 때 얼마나 공허함을 느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글쓰기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그것에서 자유로워졌길 바란다.

「마음의 방향」 117

누군가 내게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한 편의 시 같은 하루를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삶이 한 편의 시와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흘려보내더라도, 마음속에는 길고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그런 시처럼 말이다.

 

 

 

어려운 일

「마음의 방향」 132

국악은 적당함이라 하였다. 현악기의 줄은 너무 당기거나 밀지 않아야 하고, 타악기는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아야 한다. 소리 또한 감정을 싣되 너무 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인 것을 알면서도 늘 '남들처럼' 살아가길 원한다. 자신만의 균형을 잃은 채 말이다. 삶에는 언제나 '적당함'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맞는 그 '적당함'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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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 '적당함'이란 뭘까.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잠깐이라도 할 수 있는 짬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깨기 전이나 아이들이 잠든 밤, 무리해서 뭔가를 한다. 그리고 또 일상을 똑같이 보내다보면 참 피곤하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지 않았는데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아보니까 더 간절해지고 집착이 더 심해진 듯 하다. 이제 나한테 맞는 속도로, 조금은 힘을 빼고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싶다.

보통의 하루

「마음의 방향」 138

아무리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라도 제대로 된 빛을 발하지 못하면

드러낼 수 없는 것처럼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드리워진 곳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빛나는지

퍼붓는 소나기가 하늘을 얼마나 예쁘게 만드는지

펑펑 내리는 눈이 세상을 얼마나 곱게 만드는지

익숙하고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보통의 하루.

별것 아닌 일

「마음의 방향」 154

별것 아닌 일이라 할지라도, 그 '별것 아닌 일'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별것'이 되어버린다. 관계에서 생긴 자그마한 감정 소모가 하루의 기분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 말고, 그 별것 아닌 일이 정말 별것이 되지 않도록 좀 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

학기 중 밤을 새며 밥을 제때 챙겨먹지 못했을 때 손톱에 거스러미가 난 것으로 하루 종일 아린 통증을 느끼며 지난 날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작은 것, 별것 아닌 것도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지나 의미 있는 문장이 되었다. 나도 그 날의 하루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부터 풍겨져 나오는 부정적인 것들로 엉망이 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러지 않도록, 조금 더 나 자신을 챙겨야겠다.

장바구니 관계

「마음의 방향」 164

내가 한창 침체되어 있을 때 믿었던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진심으로 곁에 두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내 존재를 깨닫게 된 순간, 정말 허무하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아무리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도 결국 그 사람들에게 나는 정작 계산하지 않은 채 장바구니에만 담겨 있는 사람이구나.

++

나는 좀처럼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에 대해 기대를 크게 하지 않기도 하고 깊게 사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친구들을 좋아하고 내가 뭔가 사주는 걸 좋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을 받으면 꼭 한 두 번씩 밥을 샀다. 왠지 친한 사람들한테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았다. 살아보니 자신이 돈 생겼다고 한 턱 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내 주변만 그런가?)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각자의 삶들이 바쁘다보니 만남의 횟수도 줄고 이젠 만나도 자연스레 더치페이를 하게 된다. 사실 더치페이를 한다고 내가 선결제후 계좌로 받으려해도 상대가 적극적으로 알아서 주지 않으면 달라고 못한다.

그리고 돈 문제를 떠나서 친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내 얘기를 했는데 상대가 내 이야기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것을 추후에 알게 됐을때의 서운함은 생각보다 컸다. 「마음의 방향」에서 저자가 '장바구니관계'라고 한 것에 공감이 간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존재라 생각한다.

나의 계절

「마음의 방향」 166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더 잘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가. 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부정하고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조바심을 느낄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그 마음으로 인해 지금까지 네가 이루어 왔던 것들이 보이지 않아서 그래. 지금 너의 위치와 방향을 부러워하고 따라 올라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너의 그 고민조차 사치가 될 수 있어. 너무 위만 바라보려고 하지 말거라. 그럼 너만 더 불행하게 느껴진단다. 지금 네가 가진 것에 만족하진 말되,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거라."

++

배우의 삶을 살며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말에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 위만 바라보려 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진 말되,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라"고 조언한다. 정말 멋진 어머니다.

새벽의 기도

「마음의 방향」 178

++

「마음의 방향」의 '새벽의 기도'란 제목아래

"화려함에 속지 않고

여전하고 변함없는 것에

가치 있음을 잊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음에 의심하지 않고

동시에 나 자신을 잃지 않기를."이라고 써 있는데 어디서 본 듯 하여 찾아보니

책 겉표지 안쪽에 쓰여 있는 문구다.

톡톡튀는 발랄한 이미지의 배우, 서신애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 따라 가다보니

나도 나 자신답게,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잘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작가로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딛은 '서신애작가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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