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 흔하지만 가장 특별한 동행에 관하여
한혜진.오승현.박용미 지음 / 책소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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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은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고 난 후로 극명히 갈린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보니 속아도 제대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기쁨,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이라는 겉포장 아래 이렇게 무시무시한 '헬 오브 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결혼 새내기, 임신 새내기들에게 이런 걸 알려주지 말라는, 나만 모르는 사회적 약속이라도 있던 것일까? 아니면 나도 이렇게 속아서 살고 있는데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잔혹한 복수극일까?」

위의 문장은 꼭 나의 마음을 옮겨놓은 듯하다. 뭔가 아이를 낳고 속은 느낌, 엄마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이다. 문장으로 적확히 표현하기가 어려웠는데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표현을 만났다.

내가 거의 유일무이하게 애정하는 '엄마들의 온라인 성장카페'에서 카페지기이신 미세스찐님(한혜진님)과 일명 엄방(엄마의 꿈방)의 햇살님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시는 현직 카피라이터 오승현님, 용마란 닉네임으로 활동하시는 전직 카피라이터 박용미님이 함께 쓰신 책이 바로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이다.

작년 10월에 이 책이 나오고 바로 예약구매를 통해 만나보았다. 책은 역시나 겉모습도 안의 내용도 너무 너무 근사했다. 딱 제목과 찰떡으로 어울리는 느낌.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기 삶에서 점점 '내'가 사라져가게 된 여성들이 모여 '나'에 대한 공부를 '함께'한다. 나 자신이든 시간이든 경력이든 아니면 그저 물리적인 에너지든, 출산과 육아라는 과정 속에서 삶의 어떤 것을 상실한 느낌과 그것을 함부로 말하면 모성의 책무를 힐난받는 무언의 압박... 이 모든 힘든 순간들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는 경험은 지속되고 있다. 내가 온전히 존재해야 한 번 더 환히 웃으며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만들어진다는 걸, 이 공간의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 감사하고 놀라운 비법을 조난자의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엄마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즐겁게 서로를 구할 수 있다고.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프롤로그 중에서

위의 이유로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가 나오게 됐다고 한다. '엄마의 꿈방'이라는 맘 커뮤니티에서 여러 엄마들이 뼛속까지 내려가 진솔하게 나눈 다양한 경험담과 사유들을 한데 모아 엄마들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쓴 책이다.(p89인용)

 

책이 정말 예쁘다. 저런 아치형 문을 인테리어로 한 카페들도 많은데 책표지로 쓴 것은 처음 본다. 책표지에서 한 번 감탄하고 목차에서 한 번 감탄했다.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의 특별한 목차

짤막 짤막한 문장이나 단어로 구성되어지는 목차에 익숙한 나는 긴 문장의 목차들을 보니 참 신선하고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육아하느라, 때론 육아와 살림에 일까지 하느라 바쁠 엄마들을 위한 배려라는 걸 알았을 땐 또 한번 입이 벌어졌다. 책읽을 시간조차 없는 엄마들도 목차들의 주옥같은 문장들만이라도 읽고 '함께 육아하는 공동체'로서 연대하는 느낌을 받고 힘내라고 하는 듯 친언니같이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사실 문장 하나 하나 공감되고 마음에 아로새기고 싶은 문장이 가득 담긴 책을 만나면 깨끗하게 책을 보기가 어렵다. 형광펜으로 밑줄도 그어야할 것 같고 필사도 해야할 것 같고.....그런데 서평은 쓰기가 힘들다. 왜냐면 옮기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 내용을 많이 쓰면 작가님한테 누가 될까 염려스럽고 서평을 다시 읽기도 힘들다.

그런 책이 이번에 다시 읽은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이다.

아이를 낳은 후에야 비로소 '외로움'이란 단어를 가슴으로, 온몸으로 정학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끊어져버릴 것 같은 허리, 돌덩이 같은 목과 어깨, 현기증 나는 머리, 무거운 두 다리, 시큰시큰한 무릎과 팔목, 그 와중에 너무 굶어 꼬르륵거리는 배, 그래도 참아보려 했다. 몇 분만 노력하면 이부자리에 머리를 뉠 수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으로.

그런데 아이는 계속 울었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이내 괴성을 질렀다. 시계를 확인할 때매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중략) 아이의 울음에 내 울음이 섞였다. 엄마가 울어도 아이가 그것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갓난아기라는 사실이 나를 더 서럽게 했다.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냥 이 방에서 나가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높여 음악이라도 듣고 돌아오면 아이가 자동으로 잠들었으면 싶었다. (중략) 쓰러질 것 같지만 시간은 내게 쓰러질 틈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일 또 오늘을 복사한 하루가 돌아올 거라는 사실은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P35


내 손따라 움직여주는 순한 아이를 봤을땐 한없이 사랑스럽고 천사같은데 엄마도 아이를 낳고 몸이 예전상태로 다 돌아오기전에 점점 무거워지는 아기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제때 먹지못하는 엄마가 낮에도 돌보고 밤에도 온전히 혼자 돌보려면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내가 아는 동생은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데 그 아이들이 어렸을때 젤 힘든 부분이 " 늘 이런식으로 다람쥐쳇바퀴 돌듯 살 것 같아요. 이게 끝나지않을까 두려워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전문가보다 엄마의 촉이 곤란에 처한 아이를 구하곤 한다.

 

다섯 살은 너무 어리다는 걸 선생님들이 감안해주시면 안 되는 건지, 적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아이의 타고난 적응력만 운운하는 반응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 날 밤,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나는 더 이상 유치원에 미련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는 속삭이듯 목소리를 죽여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나는 체육이 너무 싫어. 원래는 좋아했는데 이제는 싫어."

"응, 체육 선생님은 나한테 하기 싫은 걸 자꾸 하라고 해. 나는 체육 선생님이 무서워. 우리 반 선생님도 무서워, 나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

"유치원에 가기 싫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런데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조용히 하란 듯 말하는 것이었다.

"쉿...! 엄마, 이건 우리끼리의 이야기야. 절대로 말하면 안 돼. 말하면 큰일 나."

그런 말은 누가 쓰는 거냐 고 재차 묻자 아이는 어서 자자며 말을 돌렸다. 대체 무엇이 다섯 살 아이를 이렇게 조바심 나게 한단 말인가? 다음 날, 유치원을 그만뒀다.

(중략)

. P60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적응하는 문제는 아주 큰 문제다. 엄마라면 선생님들이 자기 아이 기질이나 성격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파악할 때까지 기다려주길 원할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경험은 없었고 늘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주시는 믿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판타지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엄마라는 드라마, 극장을 가지 않아도 내 삶은 늘 버라이어티하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건의 연속, 시시각각 변하는 낯선 상황의 속출, 듣도 보도 못한 괴성과 암호 가득한 몸짓의 언어, 이것은 내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예측 불가 스릴러다. 해맑은 주인공 아이가 펼치는 아찔한 모험 스토리는 엄마라는 관객에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스릴러 장르이다.

어쩌다 보니 엄마는 영화 감독이 되었다. 고루한 과거로 뛰어든 타임리프 판타지와 예측 불가의 육아 스릴러를 어떻게 결론지을지 매 순간 고민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은 '엄마'라는 드라마는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그 묘미! 물론 오늘도 눈물나는 생고생 스토리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일 것이다. 자, 오늘도 레디 액션! P64


끝은 알 수 없는 게 묘미, 눈물나는 생고생.... 아이와 함께 하는 스펙타클한 세계에 대해 너무 재치있게 한 표현들이 재미있어 그 문장들을 옮겨왔다.

바로 옆에 잠들어 있는데도 나는 네가 너무나 그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참아지고 견뎌지는 순간, 바로 아이가 자고 있는 걸 바라볼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아이가 잠들면 아이를 그리워하는 이상한 엄마다.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만큼 사랑이 넘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p97

아이가 자는 동안 엄마는 과거에서 현재로, 또 미래로 여행을 한다. 과거 여행은, 경이로움에서 시작한다. 정녕 내 배에서 나온 아이가 맞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신기하다. 기적 같다. 현재 여행은, 하루를 돌아보며더 시작한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잘 자라고 있구나. 이런 아이에게 왜 너 잘해주지 못하고 화만 낼까? 못난 엄마 만나 네가 고생이 많구나. 미래 여행은, 약속으로 시작 한다. 내일은 화내지 말아야지. 내일은 더 잘해줘야지. 내일은 더 안아줘야지....p99-100


이 책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한 문장 중 하나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나는 네가 너무 그립다」이다. 참 이상한 말이다. 옆에 있는데도 그립다는 말. 사실 연애할때도 이런 느낌까진 아니였다. 온전히 애정을 듬뿍 쏟을 수 있는 상대가 자식이지않나 싶다. 마냥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사랑스런 보물들..... 그런데 그런 아이인데도 낮에 이런 저런 이유로 어린아이와 옥신각신 하다보면 사랑스런 눈빛으로 봐라봐 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경우엔 밤마다 잠든 얼굴보며 웅크린 다리를 펴주고 작은 등을 쓸어주면서 엄마가 부족해서, 마음이 넉넉치 못해서 더 다정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읊조리게 된다.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이 책 정말 다시 봐도 참 좋다.

정말 좋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참 몇 문장 꼽기가 힘들었다. 위에 옮긴 것 말고도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참 많았다. 그 중 아쉽게도 세 개만 더 꼽아봤다.

아이라면 누구나 지나는 흔한 과정일지라도, 엄마에게는 한 순간도 놓치기 싫은

경이로운 다큐멘터리가 된다.

 

시간은 마이너스 통장도,

대출도 안 되는 걸까?

빈곤 계층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리 남들이 나를 '엄마'라 칭해도

낯설기만하던 그 단어가 너의 입을 통해 나의 진짜 이름이 되었다

 

엄마로서의 삶은 참 스펙타클하고 다이내믹하다. 늘 새로운 이벤트가 있고 엄마나이를 먹을 수록 내공이 쌓여 아이를 대하는 여유와 기술이 생긴다. 그런 능력자들의 공로를 요즘은 그나마 조금 알아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엄마들의 삶을, 목소리를 대변한 근사한 책, 엄마이든 아니든 사람살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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