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그림책 에세이
라문숙 지음 / 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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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가 되어 내 아이에게 읽어 주는 그림책은 몇 권 정도가 될까? 예전에 친언니가 큰 조카를 낳고 '책육아'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미혼이라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나도 육아를 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책육아'는 커녕 자기 전에 그림책 한 권 읽어주기가 쉽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거의 홀로 육아를 하느라 그림책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자기 전에 계속 더 읽어달라고 요구할까봐 지레 겁을 먹었다. 이상하게도 내 아이는 낮시간대는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자기 전 모든 의식을 마치고 잘라치면 그제서야 책을 더 x100 보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좋은 그림책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서 보고, 그림책에 내 마음을 비춰보고, 위로도 해주고 그러고 나서야 아이들에게 나의 책을 보여주었다. 물론 간간히 책을 읽어주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그림책이라도 아이들은 '엄마 책'이라는 인식을 가져 주었다.

요즘은 좋아하는 그림책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알기 위해 동네 책방지기님이 운영하시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여 그림책 인증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7살 아들과 책방에 갔는데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이 너무 많아 짧은 시간동안 둘러보기가 아쉬웠다.

이런 나에게 온 책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이 책은 의미가 있었다. 이 책은 그림책 에세이이다. 그림책을 알기 전에는 '그림책 에세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 육아에 치쳐서 도서관으로 도피했을 때 봤던 그림책 에세이 <엄마가 되고 난, 이런 생각을 해-표유진 글>를 봤는데 참 좋은 느낌이었다. 책 속에서 보는 그림책 소개가 참 신선했고 엄마가 된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그림책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고서 저에겐 내가 나인지 너인지 아무나인지도 모를 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이 요동쳤어요. 모든 게 엄마가 되는 과정이려니 편하게 생각하자 하다가도 나의 작은 몸짓과 표정에 울고 웃는 아이를 보면 또 깊은 고민에 빠지는 밤들이 많았습니다.

<엄마가 되고 난, 이런 생각을 해>에서

그러고 보니 그 책을 통해 좋아진 그림책이 여럿이다. 거기서 소개된 책 중 '슈퍼거북'이라는 책이 좋아서 작가님이 동네 도서관에 초청되어 강연오셨을 때 반가움에 그림책을 들고 뵈러 간 적도 있다. 또한 에세이집에서 소개된 책 중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읽고 도움이 되었던 책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난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이 책도 참 반가웠다. 특히나 내가 좋은 느낌으로 보았던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그림책을 모티브로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가만히 들어 주었어]의 토끼처럼 내 곁에 있어 주고, 얼마가 됐든 기다려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어준다면 잠꼬대와 울음을 동반한 나의 요란한 꿈꾸기가 멈춰질까? 요즘의 잠버릇은 말 못 할 고민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만히' 곁에 있어 주고, 기다려 주고, 들어주는 이가 필요한 때문이 아닐까?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45

 

 

저자는 어떤 연유로 그림책 에세이를 썼을까? 책을 거의 읽을 때쯤에 이야기가 나온다.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_

이 책은 그림책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림책에 관해 잘 알고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은 애초에 내 몫이 아니었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즐겨 보는 사람일 뿐이지만 내가 잘못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림책에 관해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림책을 넘기고 있을 때의,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요구받지도 않으며 마음껏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을 얘기하고 깊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273

앞서 말했듯이, 요즘 하는 '그림책인증'을 통해 그 때 그 때 나의 감정을 그림책에 비춰본다. 짧은 시간동안 책을 보고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기지만 그 짧은 기록의 문장속에 내 자신의 마음이 담겨 있어 살짝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가 되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토닥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책을 받아보고 쉽게 작가님의 SNS계정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이 쓰신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다. 그 중 들어오는 책이 <전업주부입니다만> 이었다. 에세이를 통해 작가님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마당이 있는 한적한 주택에 사시고, 텃밭도 가꾸고 살림을 제대로(?) 하시며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에 힘쓰는 주부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히 자연을 통해, 살림을 하는 과정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삶을 가꾸고 돌볼 줄 아는 깊이있는 내면을 가지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전업주부입니다만>을 병행해서 읽었다. 왠지 더 알고 싶고,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을 것 같아서다.

두 책 모두 사람의 냄새, 엄마의 냄새, 주부의 냄새, 여자의 냄새가 나서 나는 참 좋았다.

사실 책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힐링하는 마음으로 즐기며 읽었지만 서평은 어떻게 써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 오늘도 '나다운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삶이 좀 고단해질때 팍팍하다고 느낄 때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을 만나 반갑다.

 

기억에 남는 구절

78

지금 생각해보니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던 때, 식구들의 귀가 시간에 맞추느라 외출했다가도 허둥지둥 돌아오기에 바빴을 때, 시간에 맞춰서 밥을 짓고 빵을 굽느라 알람을 서너 개씩 맞춰 놓던 그때가 오히려 내게는 웜홀에서의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홀로 있을 수 있었으므로 "날 좀 그냥 내버려 둬!"란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쌓인 설거지와 세탁종료를 알리는 알람 소리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다. 온갖 것들을, 책과 바느질감과 식재료들을 그대로 늘어놓고 바느질을 하고 책을 읽고 풀을 뽑았다.

104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가능하면 텅 빈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무엇을 하든 처음의 느낌이 날 테니까. 책상을 들요놓고 스탠드에 불을 켠 날,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 처음에는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중략) 낮에 억눌리며 숨어있던 감정들은 어두운 밤 홀로 있는 시간이면 방구석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나를 괴롭혔다. 호젓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시간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몰랐다. 밤마다 내 안의 온갖 감정들과 씨름을 했다. (중략) 애써 마련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시간을 형체도 없는 무언가와의 싸움으로 보내 버리는 게 억울했다. (중략) 나는 왜 내내 내 생각만 하고 있을까. 내 방이 '나'로 가득 차서 나 아닌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한 자리를 만들 수 없었다. 방이 점점 비좁게 느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뒤뚱거리다가 온 밤을 보내 버리는 꼴이었다. 나를 줄이고 줄여서 작게 만들어야 방이 점점 넓어질 터였다.

131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꼭 지금의 우리를 닮은 것 같다고 친구는 잠시도 말을 쉬지 않았다.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 늙지 않았고 서둘지 않고 느긋할 수 있고 그래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지금이 바로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때 아니겠느냐는 말을 들으면서, 요즘 주방에서 일할 때마다 틀어 놓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 나탈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품을 떠났고, 남편은 가고 엄마는 죽고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진정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133

친구는 오래도록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따. 설혹 그것이 대단한 쓸모가 없더라도 다른 누구 혹은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정작 그게 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하며 조바심을 드러냈다. 뭘 좋아하는지, 뭘 하면 즐거울지 고민하는 중이라는 말 속에는 설렘의 흔적이 보였다.

137

언젠가부터 나이를 생각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미리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긴 나이뿐일까? 여자라서, 아이가 있어서, 시골에 살아서, 본질과는 무관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나를 멈춰 서게 하고 돌아서게 한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그것들 모두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57

집안에서 마당으로 나갈 때마다 버릇처럼 심호흡을 한다. 갇혀 있던 것도 아닌데 나가면 숨통이 트인다. 마당 식물들을 눈에 담으며 몇 걸음만 걸으면 물처럼 고여있던 생각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읽을 것, 공부할 것, 정리할 것, 쓸 것, 연락할 사람, 버려야 할 물건들, 기억해야 할 약속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나면 거기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보고 싶은 사람,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보인다. 드러난 것 뒤에 항상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도 그렇다. 들여다볼수록, 책장을 천천히 넘길수록 더 잘 보인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아직 빛이 남아있는 마당에서 낮 동안 숨어있는 꽃들을 발견할 때 나는 내가 리디아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178

해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들은 안도하고 또 자란다. 삶의 어느 부분은 좀 모자란 듯 놔두어도 괜찮다. 안 되는 것, 겁나는 것, 피하고 싶은 것들을 인정하고 나면 삶이 그만큼 편해진다.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 진다. 좋아하는 것들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운이 좋다면 여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밀쳐 두었던 뭔가를 잘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숨어있는 재능을 찾아낼 지도, 잊었던 기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은 매 순간 모습을 바꾼다.

186

엄마가 되면서 이름을 잃어 버린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삶이 헛헛하다.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가 아니고 하고 싶은 만큼 엄마 노릇을 할 수 없어서 엄마는 운다. ....

215

너른 공원에 있는 한 사람을 주목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는 일, 이 섬세하고 정교한 그림책을 발견한 이후 책을 펼 때마다 내가 되풀이하는 놀이다. 누구의 이야기도 다른 이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 바로 우리들의 하루하루가 거기 있었다.

한사람의 뒤를 쫓으며 그가 가졌을 이야기를 상상한다. 비록 보이는 것은 몇몇 순간에 불과하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모퉁이를 돌 때마다 슬라이드가 넘어가듯 장면이 바뀌어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지 않아도, 어느새 그 속에서 숨겨진 저간의 사정을 알 것 같은 혹은 지나간 언젠가의 나였을 수도 있겠다는 누군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을 통해 보고 싶은 책_

베라 브로스골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

사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정다정과 이소영 <매일의 메일>

오나리 유코<밀크티>

사노 요코 <쓸데없어도 친구니까>

<리디아의 편지>

엄혜원 <수영장 가는날>

엘렌 델포르주+캉탱 그레방 <엄마>

<공원을 헤험치는 붉은물고기>

<채링크로스 84번지>

<건지아일랜드 감자 껍질 파이클럽>

<모네의 정원에서>

무라카미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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