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이달의 장르
가랑비메이커 외 20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① 책 제목 / 저자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고준영의 딸, 고애라 외 20명의 자녀들

② 감상평과 느낀점

요즘 다양한 책들이 참 많이 출판되지만 그 중에 관심 가는 책의 주제를 보면 부모님에 대한 책도 포함된다. 얼마전에

임희정 아나운서가 쓴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라는 책도 참 좋았는데 이번에 만난 책,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도 다른 느낌의 책이지만 참 좋았다. 짧게 두 권을 비교하자면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사람들의 틀에 맞춰 부모님을 숨기고 부끄러워했던 지난날들이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워 쓴, 자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모님에 대해 섬세하고,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글 앞에 왠지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는 출판사 '문장과장면들'의 기획자 가랑비메이커와 용기를 내어 오래된 기억을 꺼낸 20명의 자녀들의 인터뷰와 설문을 책에 담았다. 책의 저자가 많다는 것도 특별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써 묘사하며 더 나아가 아버지를 원망했던 지난 날을 뒤돌아본다. 또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로부터의 상처를 글로써 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위의 책을 보며, 잠시나마 나는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기도 했다. 세상에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각양각색이고, 때론 그 모습이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무능력한 모습일지라도 그 분들 모두 자식을 향한 사랑은 애틋하고 애잔하고 애처롭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자녀들은 저마다 사연있는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만의 언어로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은근히 뭉근한 따뜻함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잘 살아계신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펀딩으로 제작되었는데, 책의 표지만 봐도 뭔가 궁금증을 자아내며 든든하지만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나도 그래서 펀딩에 참여하고 두달 정도의 기다림끝에 받아보았다. 기대했던 것 만큼 내 감성에 맞았다.

(뒤늦게 확인한 후원자목록에 있는 내 이름)

 

③ 마음에 남는 글귀

아버지를 고백하기 위해 스물 한 명의 자녀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서문

오래된 상처와 미완의 감정을 꺼내는 일에는 분명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한 편의 이야기를 맺을 수 있었다.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밝히지 못한 진심이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용기를 낼 것이다.

나아갈 때 부서지는 것들, 비로소 가볍게 깊어지는 것들을 우리는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서툰 용기가 당신에게 번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P15-16

꽝 닫힌 채 열리지 않는 문 앞을 서성이는 아버지

엄격한 어머니께 끝내 전하지 못한, 늦은 고민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부모 혹은 자식을 향한 원망과 그리움

조금씩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모두 이 서글픔을 어디선가 이미 맡아 보았고 그 언젠가 만져보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짙은 부채감으로 우리를 따라 올 것이다. (중략) 그 감정들은 이전보다 더 세심한 배려가 되어 관계를 굳게 만들어주기도 할 테지만, 도리어 관계를 무겁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일에도 옅은 긴장과 의무감을 느끼게 하면서 말이다.

P22

자신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닉네임에도 자신은 없고 자식이 있다. 궁금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누군가의 말처럼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래 머물렀던 적이 있다.

P29

내게 당신은 커다란 나무 같다. 늘 그 자리에 머물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끝없이 뻗어가다가도 별안간 작게 웅크리는. 욕심일지 몰라도 나는 나의 나무, 당신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커다란 품으로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힘이 들때면 그 커다란 그늘에 숨고 이따금 배가 고플 땐 까치발을 들고서 당신의 열매에 닿고 싶다.

P69

내게는 너무도 익숙했던 아버지라는 그 품이 당신에게는 희미해져버렸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나는 그 품을, 그 이름을, 아버지 당신이 다시 한번 불러볼 수 있기를 바랐다.

P99

우리는 언제쯤 당신을 기다리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자식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당신에게 밝은 미소로 달려가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P102

할아버지를 간호하던 병실에서 우리가 단둘이 남았을 때, 조용히 건네던 당신의 한마다.

"아들 내가 나중에 늙어도 지금처럼만 해줄래?"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당연하지."라고 얼른 대답하고 말았지만, 그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P104

나에게는 거대한 산 같던 당신이 당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며 조용히 눈물 흘릴 때 나는 알았다. 거대한 산도 울음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내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당신의 삶이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키고 있을까 생각한다. 단단해 보이던 당신의 등이 처음으로 흐느낄 때, 나는 아버지라는 슬픔을 목도했다.

P109

소아마비로 걸음마저 불편한 아버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독한 진통제 같은 소주 한 잔에 땀방울을 안주 삼아 훔쳐내며 한평생 건축 현장 막일로 자식을 키워내고 가정을 지켜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는 힘 없는 여든의 백발노인이 되어 호통 한번, 된 술 한 잔 드시질 못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는 장녀인 제가 건장한 청년을 만나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남편을 만났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께서 더 잘 이해하시지 않겠냐며 허락을 구했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장애를 가지고 한 세상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내 자식마저 고생하며 사는 건 못 보겠다며, 처음으로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가슴이 찢기는 아픔이 그제야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P123

내가 사랑하는 남자, 나는 당신의 우는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울음을 참는 법을 배울 것이다. 영원히 당신을 닮은 얼굴로 살아갈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존재 아래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세상 어느 것보다 자랑스럽다.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