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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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일본의 3대 여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가 한국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냉정과 열정 사이>>와 그림책 <<몬테로소의 분홍벽>>밖에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엄청 인기였고 20대때 본 소설 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애정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책읽기에 흥미가 그닥 없었던 때라 그녀의 셈세한 문체에 매료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을 찾아서 볼 정도의 열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읽는 것을 좋아해서 시,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서, 육아서, 심리서, 인문학책 등 다양하게 보고 있는데 왠지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을 여기저기서 보자 감성이 한창 말랑말랑해진 지금 이때 그녀의 책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일었다. 그런 마음으로 만난 책 <<도쿄 타워>>


책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대화에 금방 매료되어 책이 술술 읽혔다.

왜 저자가 제목을 도쿄 타워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도쿄 타워가 나오는 문장마다 표시를 해가며 읽었다.



페이지 9

. 트렁크 팬티에 흰 셔츠만 걸치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서, 코지마 토오루는 생각한다. 어째서일까. 젖어 있는 도쿄 타워를 보고 있으면 슬프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릴 때부터 쭉 그렇다.


페이지 93

. 초등학교를 오가는 길에 토오루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수수하고 온화한, 견실하고 마음 푸근한.


페이지 219

사후미와 읽은 책도, 시후미와 들었던 음악도, 토오루를 진정 지켜 주지는 못했다. 초조한 마음에 일어서서 주방으로 같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중략) 6시가 지나고, 바깥이 마침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


페이지 240

죄책감과 달성감은 양쪽 모두 점점 부풀어 올라, 토오루의 몸안에서 날뛰었다. 이런 식으로 시후미를 꾀어낸 것은 처음이었다.(중략)

토오루는 시후미의 젖은 어깨를 양팔로 끌어안으며, 안심시키기 위해 젖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마치 불안과 흥분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시후미이기라도 한 것처럼.

와이퍼 스치는 소리가 난다. .

페이지 283


이 집의 유리창을 닦는 것은, 어릴 떄부터 코우지의 일이었다. (중략) 일단 습관이 되면 간단한 일이다. 벌써 몇 년 넘게 이 집의 유리창이 늘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아차렸는지 어떤지, 토오루로서는 알 수 없다.


페이지 332

. "아사노 말인데, 한번 제대로 소개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페이지 357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시후미와 같이 간 영화 시사회장에서 어머니와 딱 맞닥뜨린 적이 있다. 어머니는 놀란 것 같았으나, 모처럼이니 같이 차라도 한잔 마시자고 하여, 셋이서 가까운 프루트 팔러에 들어 갔다. 토오루는 결코 본의가 아니었다. 지금도 확실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토오루는 커피 잔을 한 손에 들고, 거실 창문을 열었다.



 


......그 집은 비탈길 위에 있고, 집으로 돌아올 때 역으로 이어지는 긴 비탈길 위에서, 정면에 도쿄 타워가 보였습니다. 돌아올 때는 언제나 밤이었기 때문에 도쿄 타워는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왜 그런지 어른의 인생이 좋게 느껴져서,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열아홉 살 소년들(도중에 스무 살이 되지만)의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 도쿄 타워가 지켜봐 주는 장소의 이야기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도쿄 소년들의 이야기를 쓰자, 라고.

<<도쿄 타워>> 작가의 말 중



마지막 저자의 말을 통해 저자가 왜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 묘사에 '도쿄 타워'의 묘사를 곁들였는지 위의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도쿄 타워'가 들어간 문장과 그 앞뒤 상황을 알 수 있는 문장들을 적어보면서 도쿄 타워를 바라보는 주인공 토오루의 심경을 예측해보며, 그녀의 서술 방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토오루의 심리를 그냥 '슬펐다.' '애가 타고 흥분된다' '그녀가 그립다'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도쿄 타워에 감정이입시킨 것이 놀라웠다.





페이지 142

토오루에게는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시후미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비교할 수 없다. 토오루는 미팅하는 내내 시후미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손으로 살짝 집은 것 같은 작은 코를 가진 시후미. 거실의 관음상과 꼭 닮은, 낭창낭창한 팔을 가진 시후미.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난 네가 너무 좋아."라고 토오루에게 말한 시후미. 지금 당장 시후미를 만나고 싶다.


페이지 145

토오루에게는 어딘가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코우지는 생각한다. 저렇게 어른스러운 녀석일수록 언제까지나 어린애라고.


페이지 174

토오루는 시후미와 함께가 아니면 무슨 말을 주고받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미에 대해서만, 자신의 말이 제대로 가능하다. 시후미와 함께가 아니면 식사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페이지 180

줄곧 보고 싶었다. 시후미만을 생각했다. 시후미가 읽은 책을 읽고, 시후미가 듣던 음악을 들었따.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정신이 돌아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시후미는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다. 토오루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둔 일 따위 없다는 듯이,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우아하게 술을 홀짝인다.


페이지 182

키미코와는 요즘 일주일에 나흘, 그녀가 강습 받으로 나올 때마다 만나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빈도이다. 그것이 키미코의 요구 탓인지, 자신의 욕망 탓인지, 코우지는 판단 내리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아는 사실은,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키미코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도, 그 두 가지가 한계점에서 부딪히고 있따. 말 그대로, 한계점에서.


페이지 187

실제, 그날의 일은 무엇이든, 토오루한테는 너무 행복해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더 아깝게 느껴졌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좀 더 확실히 맛보고 싶은데, 차창을 흐르는 경치처럼 붙잡을 길도 없고, 어쩔 도리도 없이 행복이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중략) 평소에는 시후미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항상 느껴왔다. 혼잡한 가운데 묘하게 들떠 있는 시후미를 보자,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다.


페이지 209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자기 자신이 가공의 존재인 듯한 기분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존재. 햇살에도, 붐비는 플랫폼에도, 현실에 전혀 스며드지 못했다. 토오루는 외톨이였다. 무엇 하나 믿을 수 없었다. 상황을 이해하거나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페이지 284

시후미와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토오루에게는 모든 것이 신선했다. 연상의 아름다운 여성과 토오루 '자신'이 서로 약속하고 만난다는 일에서부터, 전철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시후미의 행동 형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시후미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 술과 식사와 음악, 시후미와 남편의 유별난 생활 공간 등등. 모든 것이 신선하고 놀라움으로 가득 차서, 그때마다 착실하게 눈을 뜨고 받아들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들에 표시해 보았다. 이 책에는 크게 네 인물이 등장한다. 20살 청년 코오루와 코우지, 그리고 그들의 애인 시후미와 키미코. 그 외 코우지의 다른 연인 유리, 잠깐씩 등장하는 시후미 남편과 코우지의 옛 애인 아츠코와 그의 딸 요시다가 주된 인물이다.

코오루와 코우지는 둘 다 위험한 사랑을 한다. 시후미는 남편이 있고, 키미코는 남편과 아이도 있다. 시후미는 사업을 하고 인간관계가 넓으며 사교적이고 키미코는 집을 잘 가꾸는 살림 잘하는 주부이며 댄스와 요가 각종 취미생활을 즐긴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우지와 키미코의 열정적인, 욕망에 이끌린 연애보다 코오루와 시후미의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어울림을 이루는 사랑에 더욱 교감했다. 물론 둘 다 결혼한 연상 여성과 젊고 파릇한 연하 남성과의 위태로운 사랑이야기라 보는 내내 왜인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드라마가 아닌 지면에서 문장으로 묘사를 보다 보니 더욱 그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현재 온전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유부녀인 나로썬 상상도 못할 도발적인 그녀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면모를 보며 부럽다기보다 아찔한 감정이 전해져서 뭔가 이상했다.

아무튼 '에쿠니 가오리'만의 특유한 감성이 돋보인 책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잠시 일탈하는 기분으로 읽어나간 '도쿄 타워' 언제 일본을 방문해 볼지는 모르겠지만 '도쿄 타워'를 본다면 코오루가 많이 생각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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