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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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니는 회사는 다름 아닌 물류센터이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간단한 컴퓨터 업무만 한다고 하였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업무의 강도가 쎄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경력대로 취업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다닌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나는 지금은 포장일 위주로 하고 있다. 본사와의 협약, 업무 협조, 협의, cs업무는 함께 일하는 사장님이 모두 하신다. 그런데 요즘 주문량도 많아 한참 바쁜데 예전보다 컴플레인에 대한 응대에 사장님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내가 알기로도 한 제품 불량 건으로 사장님이 두 번에 걸쳐 새 제품을 보내줬다고 하는데 어느 날도 고객님께서 다시 받은 제품 중 또 불량이 있으니 새 제품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전화상으로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 옆에서 잠깐만 들어도 '와, 이 분 진상 고객이시구나. 불량을 두 번이나 바꿔드렸으면 우리 쪽에서도 최대한 응대 한 것 아닌가. 이번에 또 원하는 대로 보내드려도 또 불량이라고 자꾸만 그러실 것 같네.'라는 생각이었는데, 20분 정도가 지나도 통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은 고객님께 더 이상 물건을 보내드릴 수 없으니 불량 제품을 착불로 보내시고, 확인 후 환불처리를 해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 분은 완고하게 끝까지 새제품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셨단다. 결국 처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자, 고객은 본사에 까지 연락을 취해 본인의 억울하고 답답함을 이야기하셨고, 결국 새제품 보내드리고, 그 고객이 상담센터 직원분께 사과를 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말이 마무리지 이로 인해 우리 센터는 좀 타격이 있다했다)

이와 관련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장님도 매우 답답해하며, 본인이 말하는 스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책을 좀 많이 봐야겠다고 하셨다. 상대방이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았어도 원하는 것은 일관되게 요구를 했는데 본인이 그것을 금방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던 참에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5년동안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콜센터에서 근무한 상담원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쓴 책이다. 혹시 진상고객에 대한 대처법을 이 책의 저자는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에 책이 오자 마자 펼쳤다.

 

 

 

「콜센터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에 처한 상담원 이야기가 보도되고, 진상 고객이 화제가 되었다. 상담원의 현실이 밝혀지는 것을 보며 혹시 콜센터가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2018년 10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되어도 우리가 일하는 현실은 예전 그대로다. 상담원의 아픔이 사라지는 건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P180

 

 

「일기예보에 민감해진다. 태풍, 지진 같은 재난 상황에서 콜센터는 아수라장이다.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공연은 진행되지만 관람을 못 하는 고객이 생긴다. 왜 이런 재난 상황에서 공연이 취소되지 않는지 항의하는 민원, 반대로 공연 취소가 결정돼도 민원은 빗발친다.(중략)

 

사무실 환경은 그야말로 미세먼지가 가득하다고 보면 된다. 그 안에서 끊이지 않는 콜을 받으면 금세 목이 건조해져 따갑다.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 못할 만큼 옆 사람과 거리는 턱없이 좁아서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전염되기 쉽다.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했다가 겨우 나았는데 주위 직원들이 그대로 옮아 굉장히 미안했던 적이 있따. 어디 그뿐인가.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상담원이 많다. 통화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거북목이라 조금 웃기면서도 슬프다. 늘 모니터를 보느라 안구건조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먹고 바로 앉아 있으니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몸보다 아픈게 마음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퇴사하는 동료를 종종 본다. 친한 선배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든다고 한다. (중략)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폭식증 등 식이장애에 시달리고 심각한 불면증에 걸리는 동료도 있다.」 P33-34

 

「고객에 맞춰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진짜 내 마음이 어떤지는 돌아보지 못한다 민원 고객, 진상 고객을 응대하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동요하기 마련인데도 드러낼 수 없다. 회사는 고객에게 좋은 감정만 드러내길 바란다. 이곳에서 나는 마음이 없는 돌멩이라고 생각해보지만, 나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고객 앞에서 상처받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마음이 텅 빈 듯 헛헛하다. 감정 조절이 몸에 배서 사람을 만나는 거도 감정을 쏟는 일처럼 느껴진다.」 P35

 

「온갖 사람을 상대하며 멘탈이 강해진 게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마주하기 힘들어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주문을 외워보지만 다친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매번 고달프다.」 P71

 


늘 시시때때로 고객으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한들 그게 어찌 무뎌질까. 위의 세 문단의 글들만 봐도 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고충이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년도에는 관련법도 제정되었다지만 이렇다할 변화가 없는 것에 저자는 5년의 경력을 뒤로 하고 결국 퇴사를 택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함이 이 책의 다른 동료들을 묘사한 글들에서 느껴진다.

 

 

 

P74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선 기업에서 악성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됐다. 콜센터는 일이 커져서 본사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본사는 콜센터 내에서 조용히 처리 되길 원한다. 최대한 상담원이 진상을 막아내다가 도저히 감당 안되는 고객을 만나면 본사나 콜센터에서 대충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끝내버린다. 비상식적인 고객과 싸우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적은 금액으로 보상을 하고 조용히 시키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대응은 잠재적인 진상을 더 키울 뿐이다. 진상의 힘으로 승리를 경험한 자는 더 큰 진상으로 돌아오고, 그 때마다 상담원은 최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된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P74-75

「콜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콜센터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전문 아웃소싱업체에 맡긴다. 외주화가 어쩔 수 없는 업계의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에서 아웃소싱업체를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 잘못되었다. 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응대율을 달성하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 자연스럽게 콜센터를 운영하는 아웃소싱업체도 응대율에만 목을 매고, 상담원을 콜받는 기계로 취급한다.」 P75

 

 

 

진상고객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 콜센터를 운영하는 아웃소싱업체를 대하는 태도 모두가 진상고객이 더욱 활기를 치며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게 만드는 데 어쩔 수 없는 요인이 된다는 걸 나도 건너서 보게 되니 이런 상황이 고객을 응대하는 여러 사업장에서 번번히 나타나겠다는 걸 알게 됐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이 책에서는 진상 고객을 아래와 같이 재치있게 유형별로 나눠 관련 사례를 묘사했다. 진상중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싶었다. 그리고 보이지않는 상대와 대화한다고 예의없이 기본도 지키지않는 사람들이 정말 새삼 많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나도 상담원과 통화할 때 좀 더 신경써서 이야기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진상보고서


씨x, 미친X, 개XX야! 죽여버린다! : 욕설형

목소리가 섹시하시네요! : 성희롱형

너 일하는 데가 어디야, 내가 찾아간다! : 협박형

그러니까 네가 거기서 전화나 받고 있는 거야 : 무시형

사장(팀장, 윗사람) 바꿔! : 상급자 바꿔형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말실수 인정하시죠? : 꼬투리 잡기형

규정이고 정책이고 난 몰라! : 우기기형

너 내가 누군지 알아? : 자기 PR형

순 날강도 아니야? 생때같은 내 돈을! : 구두쇠형


 P126


위의 사진 속 이야기는 저자가 소개한 재미난 에피소드 중 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린 이야기다. 가끔 저런 일이라도 있어야 갑갑한 업무자리에서 잠깐이라도 웃으며 환기가 될 것 같다.

 

 

「낫지 못한 마음에 상처가 덧씌워지는 일을 반복하면 누구나 지친다. 초심은 사라지고 딱 컴플레인이 걸리지 않을 정도의 의무적인 친절만 유지한다. 상담 중에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고객과 감정싸움을 할 수는 없으니까. 말대꾸를 해서 고객을 무안하게 만들면 잠깐의 승리감을 맛볼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간단히 끝날 통화가 길어지고, 민원으로까지 번진다. 그러면 관리자에게 문책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건 나다.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최대한 고객에게 친절히 응대하며 상담을 수월하게 끌고 나가는 게 내가 터득한 업무 스킬이다.」 P136

 

 

 

상담원의 콜을 무작위로 청취하여 점수를 매기고 성과에 반영하는 '상담 품질(QA)평가' 제도가 있긴 하지만 저자의 콜센터는 친절한 상담원과 불친절한 상담원의 상담품질 점수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 성과에 반영하는 비율도 미미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친절함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결국 월급의 대부분은 최저임금에 별 볼 일 없는 수당 몇 개가 전부다. 5년 전에 비해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됐는데 월급은 왜 그대로일까? 여기에 콜센터를 운영하는 아웃소싱업체의 꼼수가 있따. 매년 최저임금이 올라 기본급이 늘어난 만큼 기본급 외의 수당을 깎고 없애는 수법을 쓴다. 입사한 2013년에는 기본급이 백만 원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직무수당, 만근수당이 있었고 인센티브도 최대 40만원이었다. (중략) 많은 월급을 바라는게 아니다. 다만 상담원의 값어치를 매기는 방법이 지금보다 예의를 갖추기를 바랄 뿐이다.」 P143

 

 

 

예상은 했었지만 급여가 낮아도 너무 낮다. 저자도 서울에서 월세내고 공과금내고 생활비쓰면 2주에 한번씩 주말 근무를 해서 수당을 받아도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하니 정말 친절한 상담원이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일하기 쉽지않았겠다싶었다. 사실 저자가 5년이란 긴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이 있기에 무수히 많은 상처를 감내하면서도 참고 다녔겠다싶었는데 책에서 그 내용이 많이 볼 수 없는게 좀 아쉬웠다.

 

 

 

일 잘하는 상담원이 되려면

 

 

 

 

위에서 소개한 것 외에도, '고객 상황에 맞게 응대하기','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기',' 직접 테스트해보기','컨디션 조절','메일 쓰기와 전화 스킬' 등의 제목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컴플레인 건의 원활한 해결을 위해선 고객의 말에 집중하고 니즈를 파악하는 일을 잘 했더라면 본사에 보고되는 일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민감한 성격을 지녔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반대에는 풍부한 감수성과 이해심이 가득한 나를.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차분하게 내 생각을 글로 옮기고,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소질,

거기에 예민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더하면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P205

 

 

 

「콜센터 일을 적극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도저히 못 할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상 고객을 만나 일주일 만에 도망치는 사람, 잘 버텨 1년을 채우고 나가는 사람, 지겹게 다닌 사람, 모두 콜센터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거다. 내가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세상이 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무엇을 찾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는 나의 몫인 것 같다.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느끼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고, 작은 의미라도 찾으려고 노력하면 얻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결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지금 나도 사실 내 업무환경이 썩 마음에 들진않는다. 하지만 나도 저자처럼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고,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내가 하는 다른 일들을 위해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언제 또 흔들리며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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