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번의 로그인 - 글쓰기 공동체를 꿈꾸는 열두 사람의 100일 글쓰기
이미란 외 지음 / 경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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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쓰기 공동체를 꿈꾸는 열두 사람의 100일 글쓰기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예전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글로 표현하는 것이 말에 비해 편하다는 생각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그냥 글쓰기가 내 삶의 일부이다. 엄마가 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고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한 채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데 급급한 삶을 살 때 하나의 돌파구로 '육아일기' 쓰기를 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그날그날의 아이 발달상황을 비롯한 아이의 일상을 적어 내려갔는데 유독 육아가 힘든 날은 그냥 나의 한탄과 고단함이 서려 있는 사소한 내 일기가 되었다. 남편이 서운하게 하는 날은 남편에 관한 이야기로, 아이가 힘들게 한 날은 아이의 떼부림과 고집 등으로 나의 글들에 내가 풀지 못한 응어리진 감정들을 글에 시원하게 코를 풀듯 풀어 재꼈다. 그렇게 어느새 글쓰기는 '나의 고통의 글쓰기, 몸부림의 글쓰기'가 되었고 내 개인적인 일기였기에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2~3년 정도는 일기 쓰기 정도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정리되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힘이 채워졌다. 하지만 혼자 쓰기에 한계가 왔는지 아니면 둘째가 태어나고 두 아이 육아로 일기조차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글쓰기가 어느 순간 멈췄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글쓰기에 정지 단추가 눌러지고 나서 부터 나는 표정이 없는 엄마가 된 것 같다. ',,,'의 어느 감정에도 빠져들지 못하고 그냥 단독 육아에 지쳐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엄마가 제대로 된 반응과 표정을 보이지 않자 아이들도 더 떼쓰고 자신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쳤던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지쳐갈 때,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지 않을 때 이대로 살다간 나도 아이들도 망가질 것 같아 겨우 힘을 내서 한 일이 '책 읽기'였다. 이 또한 '살기 위한 책 읽기'였다. 어떻게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점점 잃어가는 나를 찾고자 몸부림쳤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걷기 전인 둘째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가서 아이를 유모차로 재우고 책을 읽었다. 아이가 깨면 다시 아이를 돌보고 집으로 돌아와 두 아이와 부대끼며 일상을 살아내고 밤이 되면 또 책으로 들어가 나를 찾고자, 나의 공허함을 달래고자 허우적거렸다.

 

그러는 중 한 '엄마들의 성장하는 카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온라인카페(지금의 엄마의 꿈방)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엄마들을 만났다. 그들과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은 공허함을, 어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갈망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비슷했다. 점점 그 이상한(?) 카페에 매료되고 나는 함께 쓰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카페지기님이 둘째 출산과 육아로 바빠지셔서 '글 좀 쓰는 여자'의 글쓰기 프로그램 대신 자유로운 주제로 '함께 쓰기'가 진행되었다. 여러 사람이 내 글을 본다는 것이 처음엔 쑥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나 나의 시답지 않은 글, 전문성이 없는 글에도 따뜻한 공감 어린 댓글을 달아주는 것에 그동안 내가 갈급했던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참 매번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타인의 글들을 보면서 ', 나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살고 있고 사람마다 저마다의 아픔과 어려움이 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오백 번의 로그인이란 책을 택하여 읽게 된 것도 위와 같은 나의 따뜻한 경험이 생각나서였다. '함께 쓰기'의 위대함을 알고 난 뒤였으므로 12명의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글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공감과 생각을 나눴을까 무척 궁금했다.

우선 함께 글을 쓴 저자들의 소개를 살펴봤다. 국어국문학과 교수, 글쓰기이론 연구자, 심리학과 강사, 한국어교육학과 교수, 고전문학 전공 학생 등 '글쓰기'와 관련된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그 부분에서 내가 기대한 글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단순히 글쓰기가 좋아 모임을 만들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글을 썼을 거라 기대했다. 소개를 보고 '이 책이 잘 안 읽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나의 편견이길 바라면서 책을 펼쳤다.

 

100일 글쓰기는 공적인 글쓰기와 사적인 글쓰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시즌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일상과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독자가 되어 주고,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 준다.

그러다 보니 자기 검열이 덜한 글, 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이를테면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번에 각 시즌 참여자의 글 세 편씩을 골라 오백 번의 로그인을 펴내는 것은 500일 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보자는 뜻도 있지만, 이러한 글쓰기 모임이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을 해소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이러한 글쓰기 운동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오백 번의 로그인이 나오기까지 중

 

위의 글을 보고 이 책을 택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함께 글쓰기'를 통해 사회로부터 고립된 것 같은 마음을 해소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오백 번의 로그인에서 흥미 있게 읽었던 글, 몇 글을 옮겨와 본다.

 

현란한 기교로 노트북과 패드의 최대 성능을 다 활용하지는 않는다. 그럴 능력이 없다. 난 이 두 제품의 차갑고 매끄러운 알루미늄 촉감이 좋다. 그리고 사뭇 조용하고 경쾌한 키보드도... 이 최신 기계들이 나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처리 속도나 그래픽 이런 게 아니고 원초적인 감각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서늘하고 매끄러운 촉감의 화면이나 터치패드를 손으로 툭툭 건드려 화면을 키우거나 줄이거나 사라지게 하는 행동은 새로운 '접촉위안'이다. 어린이들이 곰인형, 무릎담요를 만지작거리며 정서를 조절하는 것과 거의 유사하달까. -오백 번의 로그인P25 '종이 없는 가방

 

'접촉위안'이란 말이 신선하다. 나도 그런 비슷한 것이 있다. 접촉위안은 아니고, '향기위안'정도로 해둘 수 있겠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육아 전쟁이 돌입하기 전) '베이비파우더향'이 나는 미스트를 목과 손목에 충분히 뿌린다. 아들도 좋아하는 이 향을 뿌리면 달달하고 부드러운 그 향 덕에 짜증이 날 일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오백 번의 로그인P71 '그 남자네 가게

 

 

위의 글은 '우슬초'라는 필명을 쓰는 분이 아파트 상가에서 5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에 관해 쓴 글이다. 주인은 그대로이고 업종은 두 달을 못 채우고 바뀌는 것을 보고 생각한 것을 쓴 글인데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로 "우연히 간판을 보고 나는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간판 속 형광등이 다 보이도록 호떡이라는 글씨가 오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장. 일상 속에 있는 사소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표현한 이 글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자동차 바퀴를 교체하기 위해 카센터에 갔더니, 앞뒤 바퀴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닳았다며 늘 같은 길로만 다니면 그렇게 된다는 설명을 듣고, 내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맴맴 돌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오백 번의 로그인P91 '깊고 깊은 밤, 나는 도깨비를 만났다

 

나도 그런 삶을 사는 것 같아 위기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그 극복을 위해 오늘도 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걷기로만 유지되는 이 일정에서는 자신이 걸어온 걸음걸음마다 서려 있는 땀방울과 힘겨움을 깊이 의식하게 된다. 더욱이 이 걸음은 누가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오로지 자신의 걸음만으로 달성되는 길이다. 그 한 걸음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은 걸어보면 안다. 사실 인생길이란 것도 생각해 보면, 누군가 벗해서 걸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걸음이 아니겠는가. 좀 더 깊이 있게 이유를 묻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내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내밀한 것이니, 내밀한 시간에 내밀하게 말해져야 한다.-오백 번의 로그인P101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는 것

 

 

 

오백 번의 로그인P101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는 것'의 댓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경험한 내용을 쓴 글에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고, 그 글을 대하는 동료도 함께 그 마음을 공유하며 댓글을 남겼다.

 

책을 통해서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간접 경험할 수 있지만, 위에서처럼 '함께 쓰기'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아는 것을 넘어, 나눈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댓글'을 통해 나누는 것이 '함께 쓰기'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오백 번의 로그인이란 책은 문학도 잘 알고, 글도 잘 쓰는 능력을 갖추신 분들이 쓴 글이라 그런지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 봐도 도움이 될 법한 책이다.

 

나도 글을 매끄러우면서도 포인트를 잘 담아내고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오늘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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